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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서] 진산의 와우 공격대 이야기 (WOW) 33-39편 - 펌금지입니다. 게임 이야기

진산님과 연락해서 이 글을 여기에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단, 다른 곳에 퍼가는 것은 절대 불가 라고 하십니다.
좋은 글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12월 좋은 리더가 되는 길 - WoW 의 공격대 이야기 이라는 글을 올렸었습니다.
옛날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원문 링크를 열어보니 없어졌더군요.
이 분 덕분에 웹 아카이브에 자료가 꽤 많이 정리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지만
이게 언제 없어질지 몰라서 제 블로그에 옮겨 놓습니다.
저작권 부분이 걱정되는데 문제가 될 경우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퍼온글은 inven 게시판에 있던 내용입니다.

본문중에서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
방어특성의 전사는 다르다. 그들이 해야할 일에는 한계가 없다. 타 클래스에게 부여되는 '운명'의 한계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그들의 역할이다. 그들이 확보한 어그로 만큼, 나머지 클래스의 한계는 확장된다.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오직 그들 자신의 어그로 확보 능력과 생존 능력 뿐이다. 한계는 그들 안에만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타인의 한계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방어특성의 전사를 던전 내의 리더로 만드는 힘이다. 그들이 꽂아둔 어그로의 깃발이, 파티원이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한계선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비현실적인 존재인가? 타인을 위해서 대신 맞아준다. 타인을 위해서 몹의 모든 미움을 독차지한다. 오직 그것만이 그들의 존재이유인 방어특성의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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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대 이야기 - 33: 누가 공격대를 살해하는가?

기적처럼 느껴졌던 벨라스트라즈의 첫 킬 이후, 우리는 검은날개 둥지의 모든 네임드들 중에 가장 마초스럽고! 가장 파워풀하고! 가장 단순무식하며! 에본로크에 이어 <정작 네임드 자체는 별볼일 없지만 그리 가는 길의 잡몹은 귀찮기 그지없는 네임드> 2위에 당당히 마크된 용기대장 래쉬레이어를 향해 진군했다.

하지만 이 진군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와우의 인스턴스 던전은 1주일에 한 번 리셋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용기대장을 만나기 위해 1주일에 한 번은, 송곳니와 벨라를 잡아야 했던 것이다. 벨라전은 180초동안 이루어지는 격렬하고 짧은 싸움이다. 그러나 그 180초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실로 길다.

기나긴 준비 
상급 화염 보호 물약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별로 돈을 벌고 재료를 모으는 시간은 넘어가자. 송곳니를 쓰러뜨리고, 벨라 방의 고블린들을 처치하고 난 뒤 40명 공대원들이 상층으로 이동한다. 사제들이 먼저 입장하고, 사제들을 보호할 소수의 호위 캐릭들도 입장한다. 상층의 앞에 있는 몹들을 처리하고 역술사 몹을 사제들이 지배해서 화염저항 버프를 걸기 시작한다. 패치되기 전의 상층에는 총 15명이 입장 가능한데, 사제와 기본호위 캐릭터 5명을 제하면 10명씩이 돌아가면서 상층 앞에 줄을 서고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가서 한 명 한 명 버프를 받고 나온다. 못잡아도 20분은 걸리는 과정이다. 잠깐 느슨해진 이 와중에 누군가는 전화를 받으러, 누군가는 애기가 울어서, 누군가는 잠깐 자연의 부름을 받아서 자리를 비운다. 사제들이 전원 다 버프 받았느냐고 확인하고, 겨우 철수하려고 하면 자리 비웠던 사람이 잠깐 잠깐 하면서 울며 달려온다. 다시 버프를 주고 겨우겨우 벨라 앞에 모인다. 

2 허무한 전멸 
비싼 상급 화염 보호 물약을 하나씩 마시고, 전 공대원에게 풀버프가 돌아간다. 마나를 채우고 전사 순서를 정하고 다들 신경이 잔뜩 곤두선 채로, 첫 번째 전사가 벨라에게 가서 말을 건다. 난 싸워야해! 전투 시작! 그런데 벨라가 대뜸 옆을 돌아보고 브레스를 쏜다. 난리가 난다. 파티원들이 거의 빈사상태가 되니 힐러들은 힐 돌리랴, 정신없고 딜러들은 딜을 퍼부울 엄두가 안난다. 부랴부랴 전사가 벨라의 어그로를 확보해서 겨우 머리를 돌린 찰나, 힐 하느라고 정신없던 사제 하나가 아드레날린 걸린 줄 모르고 있다가 폭사해서 힐러가 반이 죽는다. 힐러가 반이 죽자 탱커를 살릴 사람이 없다. 첫번째 탱커는 아드레날린에 걸리기도 전에 눕고, 두번째 탱커가 센스 있게 제때 머리를 앞으로 돌리긴 했지만 역시 살리기 역부족이다. ... 결국 얼마 못가 전멸한다. 

less..

책임전가
전사가 투덜거린다. 
"힐 못받아서 죽었어요. 전사를 아드레날린으로 죽이지 않고 힐 부족으로 죽이면 어쩝니까?"
힐러가 발끈한다.
"노느라고 힐 안했나요? 힐러가 초장부터 다 죽었어요. 왜 벨라가 이쪽을 돌아봅니까?"
탱커도 받아친다.
"도적측 공격이 먼저 들어갔어요. 있는 대로 도로 당겼지만 벌써 브레스는 나간 거구 어쩝니까."
도적도 가만 있을 수 없다.
"탱커가 그 정도 잡아줘야지. 극뎀딜 하라고 해놓고 그럼 뭐 어쩌라구요. 한다고 열심히 했구만."
공대 분위기 싸늘해지고, 공대장은 도로 다독여서 다시 상층 버프를 받으러 열심히 뛴다. 1번 코스가 반복된다. 

4 계속되는 전멸
겨우 상층 버프 다 받고 모였다. 화보 들이켰다. 막 마지막 주의사항 점검하고 있는데 누군가 실수로 벨라에게 마법봉(총,활)을 쏴버린다/혹은 거리 잡으려고 들어가던 1번 탱커가 그만 벨라의 인식 범위 안에 들어가 버린다. 준비 안된 상태로 공대는 다시 전멸한다. 1번 코스를 반복한다. 겨우 상층 버프 다 받았다. 이쯤 되면 화보 준비를 조금 한 공대원은 슬슬 화보를 못 먹기 시작한다. 깐깐한 공대원이 '벨라전에 화보 안드시는 분 계십니다. 이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벨라를 잡습니까? 한 번 잡았다고 만만한 놈이 아니에요! 다들 화보 드세요!" 그래도 없는 걸 어쩌냐? 못 먹는 사람은 못먹는다. 준비를 좀 덜해왔네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는 사람도 마음이 편치 않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길드챗이나 직업 채널을 통해서 평소 주는 거 없이 미웠던 공대원이 화보도 안 먹은 걸 보면 자근자근 씹어준다. 서로 싸늘해진 상태로 다시 들이댄다. 화보 못 먹은 사람부터 퍽퍽 죽어나간다. 1프로 남을 때까지 살아남아서 버티다가 죽은 사람은 더욱 열불이 터진다. 한 두명만 생존자가 있었어도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화보를 3-4개나 아끼지 않고 먹었는데! 이 모든 게 화보 안 먹고 묻어가는 저놈 때문인 것 같다. 미워 죽겠다!

무덤 파기
왜 못잡느냐, 잡아본 놈을 왜 못잡느냐. 답답하기 그지 없다. 하던 대로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계속 구멍이 난다. 겨우 좀 가능성이 보이나 싶을 때는 꼭 처음 참가한 신입이 아드폭사 사고를 낸다. 기껏 마지막 화보를 먹으면서 이걸로 꼭 잡기를 하고 바랄 때는 처음 참가한 힐러가 제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냅따 첫 탱커 어글 잡히기 전에 힐 줬다가 브레스 직격으로 맞고 힐러 피해 발생한다. 아! 도대체 답이 없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여기저기서 사고가 나지? 묻어가는 놈들이 밉다. 우리 공대 전사들은 도대체 어글을 먹을 줄을 모른다. 딜러들은 전부 녹템 단검 들었는지 전사 6명 갈아칠 때까지 힐을 해댔는데도 벨라 피가 줄지를 않는다. 어쩌란 말이냐! 아차, 이번엔 내가 실수했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실수지. 전멸을 8번이나 했는데 주의집중 흐트러지는 것도 당연하잖아! 하이고, 겨우 천신만고끝에 생난리 쳐서 잡긴 잡았네. 화보도 안 먹었을 때 잡다니. 아, 몰라, 지친다 지쳐. 아득바득 화보 먹으면 뭐해. 그냥 나도 판판이 화보 먹지 말고 대충 묻어가자.

이것이, 바로 '한 번 벨라를 눕힌 공격대가 벨라 앞에서 망가져가는 전형적인 코스'다. 도전할 땐 일어나지 않던 일이, 한 번 잡은 몹에 재도전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벨라를 잡는 법을 머리로 알게 되었고, 경험도 해봤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분명히 안다. 탱커가 이렇게 해줘야 하고 힐러가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걸. 대부분의 네임드들은 그 규칙에서 어느 정도 살짝 벗어나더라도 실수를 회복할 여유가 있다. 그러나 벨라는 살짝만 벗어나면 바로 전멸에 이르는 네임드다. 그러니 실수에 대한 비판은 엄혹하다. 공격받은 클래스는 또 나름대로 반론한다. 그러면서 공격대는 서로가 적이 된다. 의욕이 사라지고, 신뢰가 증발된다. 여기에 조금만 더 무게를 얹어주는 사고가 터지면, 그들은 언제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벨라스트라즈의 진정한 필살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하는 전투 디자인의 치밀함에 있다. 실수를 용납할 줄 모르는 사람들, 타인의 실수를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비난하는 철없는 게이머들에게 그건 공격대의 애초 목적 자체를 잊게 만드는 극약이다.

우리에게도, 그 일은 찾아왔다. 우리 공격대의 일곱 명 전사 중 한 명이 등장할 차례다. 이 친구는 성격 까칠하던 전사 A가 떠난 뒤 새로 합류했고, 전사 B와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선발 공대에서 다른 클래스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전사로는 첫 레이드였지만 검은날개 둥지에 대한 지식은 빠삭했고, 나이는 어렸고, 특성은 무분이었으며, 먼저 떠나간 전사 A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까칠했다! 결정적으로 캐릭이 노움이었다! (.......) A-1 이라고 기호를 붙일 수 있는 이 전사가 벨라전 1번 전사로 배치되었던 어느날.

벨라전 1차 트라이. 첫 전사가 벨라에게 막 붙으려는 순간 과도하게 의욕이 넘친 한 드루이드가 도트 힐 마법을 전사에게 검. 벨라 힐러진을 향해 브레스 발사. 전멸.

전사 A-1: 아놔~ 누구세여~ ('여'라고 말하면 두배로 얄밉다(...)) 도트힐 넣지 마시라니깐.

벨라전 2차 트라이. 첫 전사가 아드레날린에 걸릴 때까지 버텼으나 아드 폭사 전에 누워버림. 순간 탱킹 공백이 발생하고 전사들의 조기 사망으로 전멸.

전사 A-1: 저 힐 끊겨서 죽었어여 (역시 '여'에 주목 (...))

벨라전 3차 트라이. 일제 소멸 매크로를 놓친 도적으로 인해 벨라가 옆으로 브레스 발사. 힐러들이 도적 및 전사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에 역시 첫 전사 아드 폭사 전에 사망. 전멸.

전사 A-1: 전사가 꼭 아드로 죽어야지 힐 끊겨서 죽으면 안되는뎅. (뎅도 여에 못지 않다)

무던하게 참고 있던 사제 반장이 드디어 폭발했다. 이 사제는 공대 첫날부터 메인사제로 쭉 활동해왔고, 맡은 바 일을 성실하게하는 무게있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보였다. 공대장인 내게 그 사제가 귓말을 해왔다.

사제반장: 아 정말 전사 A-1님 너무 하네요. 말끝마다 전부 힐러 탓이라네요. 지금 사제 채널 분위기 말이 아닙니다. 공대장님. 도저히 못 참겠어요. 공대창으로 한 마디만 하면 안될까요?

사제반장이 바로 공대창으로 반박하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이유가 있다. 조금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서, 내가 아직 공대장이 되기 전, 까칠한 전사 A가 아직 공대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전사 A와 전사 B (전사 A-1과 마찬가지로 타공대에서 활동 경험이 있는) 가 어느날 매우 시시한 (...) 일로 논쟁을 벌였다. 레이드 중 탱커가 아닌 전사들이 어떤 스킬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생산적인 논쟁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어린(...) 남자애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대로, 그냥 지기 싫어서 하는 싸움의 성향도 강했다. 

공대장을 맡게 된 후, 나는 만약 레이드 중에 저런 싸움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생산적인 논쟁까지도 못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분쟁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초기에 공대원들에게 미리 말해뒀다.

"제가 다른 부탁은 안드리겠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레이드 중에 제가 볼 수 있는 공대창, 공대채널 등으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잘잘못과 무관하게 양측 공히 벌점 나갑니다. 싸우지 마세요."

이 원칙 때문에 사제 반장은, 말하자면 분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말을 공대창으로 꺼내겠다고 나에게 요구한 것이다. 나는 일단 대답했다. 

"가능한 참으세요. 분쟁이 일어나면 양쪽 다 벌점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사 A-1님의 자극적인 발언 태도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따로 주의드릴게요."

다행히 사제 반장은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물밑은 아주 죽 끓는 솥과 다름이 없었다.

사제들의 쓰린 속을 달래고 있는 사이, 전사 클래스 채널에서 오가는 대화가 보였다. 

"공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네요."
"또 전멸하면 더 할 텐데."
"어떻게 하죠? 아, 너무 안 잡히네..."
"사기가 가라앉은 건요. 사제들이 좀 너무 예민한 것 같은데요."
"무슨 의미로 하는 말씀?"
"전사 A-1님이 한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않구 기분 나쁘게 바라보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래서 공대창도 싸늘하고..."

사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한 사람은 전사 A-1과 친한 전사 B였다. 이렇게, 8클래스 중 가장 굵직한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전사와 사제 클래스가 각각 다른 불만으로 동시에 끓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아, 이것이 바로 공대 균열의 시작이구나. 이렇게 한 공대가 죽어가는구나. 불만을 표면상에 끌어내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방어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 40명이 모인 집단 내에는 불만이 끓기 마련이고, 그렇게 끓어오른 불만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대의 혈관을 경색시키고 조금씩 세포들을 죽여간다. 그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벨라 앞에서. 

누가 공격대를 살해하는가?
벨라가 아니다.
분열이다.
벨라라는 몹의 성격상 돌출되기 쉬운 '책임소재'의 분명함이 야기시킨 분열이
공대를 죽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34. 노마지지 老馬之智

전편의 마지막 장면! 거듭되는 전멸로 공격대 대화창은 싸늘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클래스별 불화는 깊어지고 있었다. 다시 또 벨라를 향해 돌격하기에는 사기가 너무 가라앉았다. 어찌해야할까?

지난 33회를 읽은 좌백이 -_-; 대뜸 달려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 성미를 아는데, 분명히 둘 다 잘랐어? 그렇지? 그렇지? 잘랐을 거야! 맞잖아? 당신 성미가 원래 그렇잖아~. 당신이 설마 양쪽 다 다독거리고 좋은게 좋은 거라고 넘어갔을리가 없지. 당신 앞에서 찡찡거리는 애들( -_)은 가차없이 잘라버리는게 원래 당신 성격이잖아. 안 그래? 내 말이 맞지?"

빨리 진실을 고백하라고 찡찡거리는 좌백을 가차없이 응징 (...) 해줬다. 하지만, 사실 그 말이 맞다. 단지 전제는 내가 내 성질대로 했다면 그랬을 거라는 거다. 

공대창은 조용하고, 물밑은 시끄러웠던 그 당시에 나는 가만히, 가능한 냉정해지려고 애쓰면서 생각했다. 문제는 이거였다. 
1. 분쟁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2. 감정적인 분쟁은 막아야 한다.
3. 그러나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간다면, 잘못된 전술수정이나 토론 또한 원천봉쇄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공격대는 친목단체가 아니다. 목적단체다. 분명히 메인탱커나 공대장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따르는 것도 필요하지만 운영진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그외의 잡다한 목소리는 다 막아버린다면 그건 40명의 게임이 아니게 된다. '잡다한 불평'을 원천봉쇄해버리면 '다양한 의견'도 원천봉쇄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이 불만들을 조율해야 분쟁은 막고 의견은 살릴 수 있을까? 그게 내 고민이었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천금같은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다. 
그때, 답답한 마음으로 주시하고 있던 전사 채널에서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전사 F라고 부르게 될 사람이다. 

전사F: 저기 말이죠......


less.. 
이 전사F는 전사 A-1과 비슷한 시기에 공격대에 들어온 신참이었는데, 전사 캐릭으로 다른 공격대에서 활동하다가 생활주기의 변화로 낮공대로 옮겨온 사람이었다. 

처음 우리 공대와의 인연은, 전의 공대를 관두고 휴식을 갖던 중 귀족의 검 쿠엘세라를 만들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쿠엘세라는 거의 모든 전사들이 선호하는 에픽 한손 도검으로, 탱커용으로는 전설급 도검인 우레폭풍에 버금가는 성능을 자랑한다. 이 검은 검 자체로 드랍되는 것이 아니라 '용사냥개론'이라는 책을 얻고 퀘스트를 해야 하는데, 퀘스트의 마지막은 오닉시아로 연결된다. 달궈지지 않은 고대의 검을 들고 오닉시아에게 가서 그 피에 담금질을 하면 최종적으로 쿠엘세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공격대에 속하지 않은 전사들이 이 책을 얻게 되면 오닉시아를 잡는 정규공격대에 용병으로 들어와 오닉을 잡으면서 그 피에 칼을 담금질하곤 했다. 

전사F는 쿠엘세라를 만들기 위한 용병으로 우리 공대와 처음 인연을 맺었고, 그 얼마 뒤에 공대의 사냥꾼 B의 소개를 통해 합류한 참이었다. 당시의 전사진 중에는 가장 나이가 많았고, 신참이었으나 우리 공대보다 역사가 오래된 타공대에서 장기간 활동해 레이드 경험도 풍부했다.

타공대에서 경험을 많이 한 전사를 받아들일 때, 장비가 좋다고 무조건 환영하기는 좀 어렵다. 특히나 그가 들어올 당시에는 메인탱커가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라, 나는 솔직히 '경험'을 무기로 현재 공대의 전술이나 메인탱커의 방식에 딴지를 걸어 위축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고, 매우 '유심히' 지켜봤다. 하지만 전사F는 거의 아무 말 없이 메인탱커와 현공대의 방식에 잘 따라주었기에 저으기 안심하던 참이었다. 그런 그가, 이 난감한 상황에서 입을 연 것이다.

전사F: 제가 많은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사F: 우리 공대 힐러분들 장비 상태나 경험에 비해서 지금 무척 잘 해주시고 있는 겁니다.
전사F: 사실 벨라는 전사들이 잘 해야 잡을 수 있어요. 전사 책임이 커요.
전사F: 물론 힐러도 실수할때 있죠. 
전사F: 그런데 우린 다른 클래스 실수 이야기할 입장이 못돼요.
전사F: 전사는 '항상' 실수할 수 있거든요. 실패하면 대부분 전사 실수에요.
전사F: 우리 실수부터 먼저 짚어보죠?

여전히 앙금은 남아 있었지만, 전사F의 말이 정론이었기 때문에 불만을 토하던 전사A-1과 B도 그 이상 심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전사들은 천천히, 탱킹 시에 각자 쓰는 기술들에 대한 확인을 시작했다.

나는 채널 구석(...)에 짱박혀서 이 상황을 엿보면서, 재미있게도 좌백의 소설 '대도오'의 한 인물을 떠올렸다. 바로 '노대'라는 인물이다. 바람 따라 흘러다니는 거친 용병들 중 한 명인, 늙은 무사 노대. 예전에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사연이 있음직도 하지만 절대 말하지 않는 노대. 엄청난 고수이거나 뛰어난 배경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도, 늘 뒤에 서서 젊은이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성장해나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이따금 조언을 해주던 노대.

제나라 환공이 관중과 습붕을 데리고 전쟁에 나가 이기고 돌아오던 길에 길을 잃었다. 전군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때 관중이 말하기를 "이럴 때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보아야 합니다." 늙은 말 한 필을 풀어 군대의 선두에 서게 하자 이 노마는 절로 큰 길을 찾아 나갔다. 이를 일컬어 늙은 말의 지혜 , 노마지지老馬之智 라 한다.

우리 노대 (...) 전사F님은 지금도 아득바득 자신은 영계 -_-;;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노대 도장을 꽝꽝 찍어드리고 노마지지의 고사를 헌정한다. (...)

늙은 말의 지혜를 빌어, 나는 즉시 공대 채널을 통해서 부탁했다. 

'클래스별로 자기 클래스의 문제를 먼저 짚어주세요. 혹시나 타클래스에 협조를 요청할 부분이 있다면 각 클래스 팀장들을 통해서 운영진 채널로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전투 진행 중에는 일절 전투 상황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는 금지합니다. 무조건 전투에 집중합니다. 전투가 종료된 후 문제의 원인을 각 클래스별로 토론하고, 의견을 수합해 다음 도전시 수정할 사항을 결정합니다.'

'타 직업의 전술에 대한 의견은 반드시 직업장을 통해서 운영진 채널로 모읍니다. 개별적으로 지적하지 마세요. 감정을 자극하는 요청이 반복될 경우 1회 경고, 그 다음부터는 벌점입니다.'

잠시 클래스별로 자기 클래스의 벨라전 전술에 대한 토론을 진행시켰다. 그 사이에, 또 한 명의 노마 (...) 인, 사냥꾼 B (전사 F를 공대에 소개시킨) 가 귓말을 넌즈시 보내왔다.

사냥꾼 B: 공대장님. 채찍 주셨으니 당근도 좀. +_+

그래서, 공대원의 (...) 요청에 충실히 따랐다. 이미 한 번 정복해서 퍼스트 킬 보너스 점수를 받았던 벨라지만, 오늘은 특별히 벨라 두번째 킬 보너스를 주겠다고 공지했다.

사실 그 몇점의 포인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라앉은 분위기를 상승시킬 '계기'가 필요했던 공대원들은, 마치 그 보너스를 위해서인것마냥 눈에 불을 켰다. 물약이 떨어진 사람들을 체크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물약을 나눠주는 모습이 보였다. 시키지 않았지만, 공대원들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운영진 채널에서는 금지해야할 것과 챙겨야할 것을 이야기했고, 역할을 분담하고, 각 클래스별로 지침이 내려갔다. 믿음의 탱킹을 강조하던 전사 반장은, 아직 익숙치 않아  벨라의 고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힐러들은 좀 더 힐이 용이한 파티 배치를 요구했고, 그 요구에 나는 따랐다. 도적 클래스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도적 반장: 공대장님. 화저셋 벗고 뎀딜셋으로 입어도 되겠습니까? (이때까지, 우리 공대는 도적클래스가 화저셋을 적당히 섞어 입고 딜하던 상황이었다)
공대장 : 힐러분들이 감당해주실 몫이 커질 것 같은데, 메인탱커님과 힐러반장님 의견은 어떠세요?
메인탱커가 찬성했고, 3개의 힐 클래스에서는 도적까지 살리기 위한 역할 분담을 마쳤다. 
공대장: 예. 그럼 이제부터 도적분들은 가장 뎀딜을 잘 할 수 있는 장비로 입어주세요. 빠지는 피는 힐러분들이 채워주실 거에요.
도적 반장: 최선을 다해 썰겠습니다!
 (<--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 군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서, 모니터를 벅벅 긁으며 웃었다. 아휴 남자애들이란 (...))

칼은 더욱 날카롭게, 치유의 방식은 좀 더 복합적으로, 그리고 탱킹은, 믿음으로. (웃음)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벨라를 잡았다. 

하지만 이 '대처'만으로 만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또 다른 일이 남아 있었다.
그날, 레이드가 종료된 뒤, 나는 전사 A-1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35. 위선의 신화가 필요할 때

공대장과의 단독면담은 어떤 기분일까? 잘은 모르지만, 다들 방과 후에 교무실로 오너라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한다. (...)

레이드 종료 후, 전사 A-1과 단독 면담을 청한 나는,
<전사 A-1님과 B님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공대에는 이 공대만의 분위기라는 것이 있으니, 될 수 있으면 타클래스에 대한 지적 발언은 공개적으로는 하지 말아달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보이면 전사 채널을 통하거나 아니면 나한테 바로 귓말을 해라. 적절한 방법으로 해당 클래스에 전달해서 문제가 수정되도록 해보겠다> 
라고, 가능한 웃으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 (겁 안 줬다. 정말이다! 믿어달라! (...))

물론,<마음이 아프지만 분쟁이 일어나면 벌점을 준다는 규칙대로, 너무 까칠한 발언하시면 벌점을 드릴 수 밖에 없으니 이 점은 양해해달라> 는 것도 덧붙였다. (...)

전사 A-1은 어리긴 했지만 영리한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을 해줬다. 

"넹.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여. 조심할게여. "
 (..아, 아름다운 '여체'여.)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전사 A-1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불만이 발생하면 즉자적인 분쟁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반드시 불만사항에 대한 전달을 공대장이 상대방에게 해준다는 확인이 중요하다. 그래야 '레이드 중에 싸우지 말라'는 규칙을 요구할 근거가 생긴다. 면담이 끝난 후 사제 반장에게 전사 A-1과의 대화 내용을 전달했고, 이후로는 가능한 조심할 것이니 마음 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으로 그날의 뒷수습은 일단락되었지만, 과연 이런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을까? 아니다. 나는 사람을 그렇게 순진하게 믿지 않는다. ^^; 전사 A-1이나 B가 느끼는, 힐러들에 대한 불만이 공대장과의 면담으로 사라질리가 없다. 이미 마음 상한 사제들 또한 마찬가지다. 감정은 남지만,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공격대라는 틀 안에서는 정론을 따르고, 다같이 착한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약속으로 확인한 것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지만, 그것이 최선이고, 그것외에 해결방법은 없다. 마음 속에 불만을 감춘 채 겉으로는 자기 반성을 하고 예의를 지켜가며 남에게 조언하는 이 행위들이 위선일까? 

그래, 위선 맞다. 그러나 똑같이 반쯤의 진실, 반쯤의 거짓이라면 '위선'해야 한다. 우리가 공격대 활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인간의 비열함을 증명하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실존적 고독에 취하기 위해서인가? 절대 아니다. 우리는 다수 활동으로 몹을 쓰러뜨리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그 결과물을 누리기 위해서 공격대 활동을 한다. 그외의 쓸데없는 건 잊어야 한다. 그러므로, 똑같은 '위'라면 '위악'보다야 '위선'이 낫지 않은가? 

게다가 위선에는 또 하나의 보너스가 있다. 궁극의 위선은 정말로 위선 자체에 도취하게 만들어, 현실에서는 보잘것없는 회사원이거나 성적표에 쌍권총만 수두룩한 불량학생일지언정 컴퓨터 앞에 앉아 와우에 접속하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를 한 사람의 당당한 모험가로 만든다. 위선이 진실이 되는 순간도 있는 것이다. 내가 좌백이 말한 바, '내 성질대로' 하지 않고 공대장으로서 '양쪽의 위선'을 중재했을 때, 나 역시 조금씩 그 롤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Role Playing 이 아닐까?

less..
그무렵, 공대원들은 우리 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실력은 어떨지 몰라도, 분위기 하나만큼은 서버 최고다!"
이건 일종의 신화였다. 신화의 힘은 의외로 강력하게 공격대를 결속시켰다. 

벨라전의 고비 이후, 메인탱커는 네임드전에 돌입할때마다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만약 도전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잠시 휴식을 갖고 (벨라전의 경우 상층 버프 시간이 짬을 만들어주었다) 메인탱커가 동영상을 분석하여, 실패 원인을 짚어냈다. 사람의 편견은 실수를 낳을 수 있지만, 동영상은 절대 거짓을 기록하지 않는다. (...) 

한번은, 동영상 분석 결과 메인탱커의 실수가 드러난 적도 있다. 

그분: 허거덩
그분: 공대님들
그분: 방금 동영상 보니깐욧
그분: 제가 구축을 못지워서
그분: 어글이 튀었네욧
그분: 정말로 죄송해욧 '';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자신의, 자기 클래스의 실수를사과 하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전사의 실수일 때도 있고, 힐러의 실수일 때도 있고, 딜러의 실수일 때도 있었다. 감정과 짐작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에 근거한 비판을 요구했고, 비판을 수용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자세를 부탁했다. 이 원칙이 지켜지는 동안, 공대는 설령 공략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았다. 이 원칙이 흔들릴 때, 공대는 우울해졌다. 

그날로부터 얼마 뒤에, 전사 A-1은 지나가는 말로 내게 이야기했다.

"제가 좀, 원래 말하는게 이런데다가, 사실 먼저 다닌 공대랑 여기랑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적응을 못했어여. 거기서는 잡던 몹 못잡으면 서로 지적 다 하고 그런 분위기라, 물론 그것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그렇지만. 여기서도 그래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좀 말을 막했었네여. 이제 좀 정신차렸어여."

물론 이 친구는 ^^ 얄미운 캐릭터다. 그렇게 자제 시킨 이후에도, 그리고 자신이 인정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 되바라진 말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세계를 바꾸는것보다도 어려운 것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저렇게 말을 하며 건네온, 영리하고 약삭빠른 화해 제스춰를 보며 나는 그렇게 '말이라도' 해줄 수 있는 그 친구의 처세 센스와 솔직함이 고마웠다. 설령 그것이 진짜 변화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가 '지나가는' 말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공대 힐러들과 '지나가면서' 하는 말로 종종 '전사 A-1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대요' 라고 이야기해줬다. 비단 이 일 뿐이 아니라, 유달리 사이가 좋지 않은 공대원이 있거나, 직업장들끼리 행여 충돌이라도 벌어졌을 때, 나는 어떻게든 가능한 A에게는 B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는 화해의 단서를, B에게는 A가 제대로 표현 못하는 진심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하도 그랬더니 나중에는 '공대장님은 변호사 하시면 잘 할 것 같아요' (...) 라는 말도 들었다. -_-;;

왜 그랬을까? 그러면 힐러들이 갑자기 상처를 극복하고 전사 A-1과 사이가 좋아질까봐? 그밖에도 일어나는 자잘한 앙금들이 이런 중재로 완전히 해결될 거라고 믿어서? 

천만에.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게 100프로의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40명의 바보들이 모인 집단을 유지시키는 룰이기 때문이다. 40명 중에는 늘 영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얌체도, 비겁자도, 배신자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신화는, 얌체와 비겁자와 배신자, 이기주의자들과 '어쩔 수 없이 같이 게임을 해야 한다'는 씁쓸한 신화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얌체도, 비겁자도, 배신자도, 이따금은 정을 느끼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면서, 터무니없이 작지만 자신에게는 대단할 수도 있는 시간과 작은 물자를 바쳐가면서 같은 순간에, 같은 곳에서 거대한 용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믿음, 바보들의 신화이기 때문이다. 

공대장의 발언은, 그 하나하나가 알게 모르게 공대원들의 심리속에 잠자고 있는 '어떤 것'을 일깨우기도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노부인 탐정 마플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요. 단지 어리석을 뿐이지요. 그렇다. 어떤 공대원도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단지 40명의 바보일 뿐이다.  의심과 분열, 불만, 아이템을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처럼 하는 게임. 이런 이야기를 공대장이 하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공대원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의심과 분열, 불만, 피동적인 태도가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공대를 이끄는 사람들은 가능한 바보 영웅들에게 맞는, 그들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걸 퍼뜨려야 한다. 그것이 설령 허구일지라도, 조금만 근거를 만들면 그 허구가 곧 진실이 되고, 믿음이 된다.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합을,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를! 

주의해야할 것은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인 파악과 대처는 냉정하고 재빨라야 한다. 하지만 처벌은 규칙에 의한 것이어야지 밀려드는 원망에 등을 떠밀려 집행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현실적인 영역이다. 집단의 분위기를 만드는 신화는 그보다는 좀 더 다른 영역이다. 공대장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만들 수 없다. 많은 협조자가 필요하다. 바보들의 신화는, 바보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위선을 행하고,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40명의 바보들.
그리고 그 신화의 집단창작을 이끌고, 전승을 지원하는 공대장.

하지만, 여기에는 '만들고, 퍼뜨려야할' 신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끝까지 마음 속에 묻어두어야할,
비밀스러운 신화도 있다.
36. 별전미칠 듯한 !! - 용기대장전

사실공대원들과 공유할 수 없었던 이야기나나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간직하고 있어야 했던 이야기를 막상 하려니 여러 가지로 걸리는게 있다내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까지 침범하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무슨 대단한 비리나 비밀 같은 건 아니다단지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다타인의 이야기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존중되어야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에어떤 통로로 퍼져나갈지 모를 공간에 털어놓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고그래서 잠깐 쉬어가는 의미에서 용기대장전에 대한 짧은 이야기나 써볼까 한다.


용기대장은 검은날개 둥지의 3번째 네임드로벨라를 잡고 난 다음 꽤나 까다로운 함정을 제거하면서 그 함정 주변을 지키는 무수한 새끼용과 네파리안의 부하들을 제거한 다음에야 만날 수 있는 녀석이다중간에 제거해야 하는 몹들은 짧은 시간내에 다시 리스폰되기 때문에 중간에 쉴 틈이 거의 없다파워 자체로야 밀리지 않겠지만 그 몹들 잡으면서 천천히 가기 시작하면 결국 마나가 말라서 항복하게 되는 코스다

그래서용기대장을 잡으러 가는 동안 공대는 거의 단체 100미터 달리기를 해야 한다메인탱커의 사인에 따라 "이동!" 하면 이동을 하고중간중간 벽감 같은 곳에서 "광역마법!" 하면 광역마법으로 쌓인 잡몹들을 처리해준다중간중간 설치된 함정은 전 공대원의 이동속도와 캐스팅 속도를 늦추는데이건 도적 몇명이 공대의 전방과 후방에서 제거를 해줘야만 이동에 문제가 없다이런 방식으로 공대의 전력에 따라 약 10-2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뛰는데이 과정에서 최악의 적은 바로 랙신강림이다이 코스가 유달리 토나오는 곳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도엄청난 프레임을 잡아먹는 다수 몹의 출현과 광역 마법의 난사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해서 코스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용기대장이 기다리고 있다용기대장은 아주 무식한 놈이다벨라전같은 섬세한 디자인이 아니다이놈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한 방뿐이다. ; 따라서 잡는 방법도 단순무식하다원거리계열과 힐러는 거리를 띄우고도적과 전사는 용기대장을 둘러싸고 난타전을 한다전사는 특정한 탱커를 지정하지 않고 거의 '미칠 듯이서로 어그로를 돌려먹는다워낙 한 방이 강해서최초 도전시에는 크리티컬 히트를 맞으면 누구라도 일격사하기 쉬운 녀석이다. (요새는 장비가 좋아져서 안 그렇지만


스치면 죽음인 이 용기대장이 만의 하나 원거리 계열로 어그로가 튀어서연약하기 그지없는 힐러나 마법사들 사이로 뛰어와 칼질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볏단 쓰러지듯 전멸로 이어지기 때문에공략 초기에는 용기대장이 원거리 장소로 뛰어올 경우 어그로 대상자는 재빨리 전사들의 위치로 달려가 죽더라도 그곳에서 죽는 것이 원칙이었다그리고 우리가 용기대장을 공략하던 당시에는 부활조 가동이 가능했던 때라 (아직 패치 전사상자는 얼른 리필(...) 해서 잡곤 했다
.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요즘은 용기대장이 원거리 쪽으로 달려오는 일 자체도 없고부활조를 돌릴 일도 없다정신없이 바뀌는 용기대장의 타겟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힐하느라고 고생하던 힐러들도죽은척하기(자신을 보는 몹을 따돌리는 사냥꾼의 스킬이다)가 저항이 나서 용기대장을 끌고 전사 자리까지 뛰어간 사냥꾼이 끝까지 죽지 않도록 치료를 해주면서 채널창으로 농담따먹기까지 가능해질 만큼 익숙해져버렸다. (...) 도전 중인 공대에게는 벨라 다음이라 상대적으로 더 약해 보이고이미 파밍상태인 공대에게는 힘만 세지 크게 어려움도 없고 저항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존재감 없는 네임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옛날죽을둥 살둥하면서 잡아냈던 용기대장에 대한 기묘한 애착을 느낀다왜냐하면 이 용기대장이 내가 처음으로 공대 동영상을 만든 몹이고그 위태롭고 격렬한 공략 자체가 상당히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내가 마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 벨라전을 치른 직후 경험하게 되는 용기대장전은 극히 상반되는 매력을 품고 있다평타 1.5대 차이로 앞 전사와 뒷전사가 절묘한 어그로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벨라전과 달리누구할 것없이 전사라면 최선을 다해 자기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그야말로 극대화의 싸움이 갖는 호쾌한 맛이란... 이를 테면 북두신권! (... 앗 이건 역시 마초취향인가--)


아래 덧붙인 동영상은공략 초기의 용기대장전을 촬영한 것인데이무렵은 슬슬 투톱 체제도 슬슬 안정화가 되어가던 시기다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메인탱커와 나는 수고하셨습니다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외에는 별 대화가 없었다. (아이템 안 밀어주겠다는 이야기 한 번 한 거 빼고는 --a)

그런데 성실하게 메인탱커 임무를 잘 수행하던 그분께서 어느날 갑자기 '부탁'이 있다고 해서 사실 좀 간이 콩알만해졌다(....) .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면 어쩌나 하고그런데 그 부탁이란 --;; 동영상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촬영은 했는데편집할 줄은 모르니 공대원 중에 편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시켜서 하나 만들어보면 .. 안될까욧
? (.......) 

.. 
솔직히 영상 편집을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고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밖에 못만드는데 (효율적인 압축방법은 완전 젬병이고시간은 엄청 많이 걸린다. (..대충 하는 걸수록 더 그런 듯하지만, -_-;; 말 잘듣고 착한 메인탱커의 소원이라는데 간을 빼달라고 해도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orz (....아마 많은 공대장들이 이 말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다. -_-;;) 결국 이걸로 그동안 고생시킨 값을 대신 치른 셈인데해보니까 의외로 재미있었다. (아하하하하가장 만들고 싶어했던 것은 벨라전 동영상이었지만우선 시험삼아 먼저 만들어본 것이 용기대장전이다.

동영상을 보다보면메인탱커가 촬영한 것이라 화면 중심의 캐릭터가 메인탱커 그분 (...) 이다보면 탱킹은 둘째고 일단 뭐라뭐라 지시하기에 바쁘다 (...) 공략 초기였던 때라 아직 어그로 튀는 것이 심하다용기대장이 힐러들 자리로 몇번 뛰어간다강력한 한 방주변 일대에 데미지를 주는 휩쓸기그리고 넉백까지 있는 이 놈이 원거리 쪽으로 튀면 아주 난리가 난다그래서 힐러에게 달려간 용기대장을 전사와 도적들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도로 끌고 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 이르면 안쓰럽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다. >_<

메인탱커도 한 번 눕기도 한다곧바로 부활조(.. 나다 -_-V)가 부활시켜주긴 하지만메인탱커가 누웠을때항상 그 근처에서 멋진 포즈 ( -_)로 버티고 서있는 나엘 남자 전사가 바로 전사 반장이자 서브탱커다언제 봐도 든든한 모습이다. (.. 건들거리기도 하지만 ;) 메인탱커 사망시 화면을 붉게 물들이는 효과는 게임 이펙트가 아니라 내가 편집해서 넣은 거다
. >_< 

난전 와중에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빛기둥은 부활마법이 시전되는 효과다내가 다 살렸다 (!) 부활하다 마나 떨어져본 건 용기대장전이 유일하다 (.. 그 이후로는 부활조 자체가 막혀버려서 --)


영상 중간에 '미칠 듯한 뎀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이건 극뎀딜을 요구할 때 메인탱커가 항상 외치던 일종의 구호다라그나로스때부터 시작된 이 구호를 처음 들었을 때나는 상당히 고민했다왜 미친 듯한이 아니라 미칠 듯한 일까? -_-a 그런데 자주 듣다 보니 두 말의 차이가 오묘하게 와 닿았다미친 '듯한은 일종의 완성형이다하지만 미칠 '듯한은 진행형이자바로 코 앞에 있는 결승선을 향해서 닿을 듯 말 듯한 느낌이라서, '미친 듯한뎀딜이라고 할때보다는 '미칠 듯한뎀딜이라고 할때 .. 뭐랄까더 간지럽고.. -_-a 약이 오른다!!! (...)

극도의 데미지 딜링을 요구하는 몹들이 많긴 하지만그리고 용기대장은 지금에 와서는 뭐 그리 극뎀딜을 요구하는 놈 같지도 않게 손쉽게 잡히지만나는 이 '미칠 듯한이라는 형용이 가장 어울리는 것은 역시 용기대장전이라는 생각이 든다.어그로 관리도 안되고 사상자도 많이 발생하던 시절의 거친 영상 (게다가 편집도 매우 거칠다첫 연습작이어서인데그렇기 때문에 더욱 역동적이고그야말로 '미칠 듯한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그림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이 영상을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매우 여려(...) 보이는 인간 여전사 메인탱커가 쓰러지고 난 뒤 그 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가는 남자 나엘 전사의 든든한 등짝(!)은 그야말로 꺄하하다. >< (후르릅)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고,
용기대장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변했구나
.

온몸이 망신창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치고부딪치고또 부딪치면서도 포기할 줄 몰랐던젊은 시절의 약간 민망한 추억 한 토막처럼이걸 보고 있다면 묘하게 맘이 아릿하다지금은 더 이상 함께 게임을 하지 못하는그리운 이름들도 곳곳에 보이고
.
그런 의미에서동영상 배경음악은 Still Waiting.


*..영상을 올려놓고 다시 보니까이건 마치 <연약하고 아리따운 캐스터>를 덮치러 자꾸 가려고 하는 <변태 용기대장>을 온힘을 다해 막아내는 <열혈 전사/도적>들의 순정을 그린 눈물나는 매드 무비가 아닌가! (.. 도주)

 

37. 당신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 1/2

절대로 퍼뜨려서는 안될 신화라는 말에서 무엇을 연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안타깝게도 19금도 아니고 (?) 비리도 아니다. (...) 공대장 노릇을 하면서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선반드시 지켜야할 선이라고 생각했던 원칙들이다하지만 실제로는 어기기 무척 쉬운 원칙들이다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가능한 선까지는 이 원칙들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했다이것마저 무너지면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일하지 않기

눈뜨자마자 와우 접속해서 지쳐 쓰러져 잠들 때까지 자나깨나 공대 걱정 앉으나서나 공대 걱정인던도 못가고 하루종일 아포나 오그리마에 죽치고 앉아 공대 관련 문의나 상담 처리만 종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회의가 찾아올 것이다. "...공무원인가." orz (....) 
성실하게 공대 일을 처리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하지만 24시간 공대를 위해 헌신하는 건 하나도 좋을 게 없다설령 실제로 그렇게 할 일이 많더라도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당신은 일이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다이건 게임이다이런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안 그랬을 경우 일찍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 속에 두 개의 스위치를 준비해두는게 좋다공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한참 한탄하다가, '앗 이거 과열인데싶으면 재빨리 다른 스위치를 켜는 연습이 필요하다성격상 이게 안되거든와우에 접속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두던가 아니면 부캐를 키우되 공대원들한테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

공대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서 도저히 머리를 쉴 수가 없어요그럼 집어쳐라게임이 아니라 일이 되는 공대는 할 필요가 없다공대장에게 일이 될 정도면 공대원한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스터키튼이라는 만화에인질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유괴범과 교섭하는 네고시에이터에게는 하루 일정시간 이상의 휴식을 취할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공대장 역시 마찬가지다쉬어야할 의무가 있다이 의무를 지키지 않고 난 열심히 하려고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흑흑흑 이렇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직무 유기다.


물론공격대를 운영하다보면 싫어도 해야할 일도 있고의무적으로 지켜야할 원칙도 있다그건 공대원에게도 공대장에게도 마찬가지다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암묵적인 약속이다더 큰 즐거움을 위해서더 긴장감 있는 게임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과제하듯이직장생활하듯이 할 일이 아니다잊지 않아야 한다누구보다도 일이 많은 공대장이 게임을 늘 즐기고 있어야 공대원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그러므로 당신이 이따금 어쩔 수 없이 '일처럼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신에게도 공대원들에게도 속여야 한다이건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도 저도 안되면 최후에는 이런 사기라도 쳐야 한다. (...) 공대장 노릇 하면 열라!!!! 재미있다고 말이다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고생 무척 한다고 티만 내다보면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그 무서운 일이란 바로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 후임자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게 고생만 하는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니 ㅠㅠ)

티내지 않아도항상 노는 척 해도어차피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제정신박힌 공대원이라면 공대장이 일 많다는 거 다 알고 있다공대원들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제정신 박힌 공대장이라면 다 알고 있다그걸 전제로 우리는 '게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조금 더 수고하고 있을 뿐이지일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그리고 해결책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붙들고 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게임이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가장 즐길 수 있는공격대 관련 일 이외의 다른 컨텐츠'를 스스로 하나 정해두고 그걸 꾸준히 하기를 추천한다그건 평판 작업일 수도 있고아이템 콜렉션일 수도 있고골드 모으기일 수도 있다뭐 정 안되면 와우 밖에서 찾아도 된다어쨌거나 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미워하지 않기

이건 참 공대장도 인간인 이상 지키기 힘든 원칙이다공대원 중에 분명히 미운 놈도 있고 이쁜 놈도있을 거다왠지 궁합이 안 맞고 부담스럽다거나 짜증나는 타입없을 수가 없다그런 놈들은 꼭 규칙은 아슬아슬하게 잘 지켜서 잘라낼 명분도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사실나는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는다착해서천만에 --;; 관심이 있어야 미워하지. -_-;;;; 나한테 인간은 딱 두 종류다내가 '그나마마음에 들어하는 사람과그외 다수의 투명인간들하는 일이 이렇다보니까나는 '미워하거나' '내 타입이 아니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억지로 한 조직한 공간 안에서 숨쉬고지내야만 할 이유가 없다직장을 다녔다면 어쩔 수 없이 그걸 인내해야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말이다그러니까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 있다면그냥 그 인간그 인간이 속한 조직그 인간과 친분이 있어서 어울리다보면 반드시 같이 엮이게 되는 사람들과는 아주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안 보면 그 뿐이기 때문에내 타입이 아닌 인간들은 미움이 충분히 익기도 전에 먼저 투명인간이 되어 무관심의 영역으로 추방당한다내가 좋아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는 미워할 에너지도 투자하기 아깝단 말이다.


그런데공대장이 되고 보니 이거 큰일이었다공대장을 때려치우지 않는 한지금껏 내가 지켜왔던 저 무관심의 원칙을 지킬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공대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별 문제 안된다감정 없이 규칙에 의해 결정하면 되니까문제는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을 견디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아무리 공대 분위기가 좋다고 해도 저건 어쩔 수 없다그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다그런데 안 맞는다그런데 참아야 한다쿠어어미칠 노릇이다.

초인적인 인내와 공대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으로 모든 공대원을 동등하게 보면서 미움도 편애도 하지 않고 원만하고 평온무사 불편부당하게 처리했.... 을까


그랬으면 참 위인전이겠지만 ^^;; 나도 싫은 건 싫은 거라 어쩔 수 없었다그래서 게다가 '취향문제만 있는게 아니다말 잘 듣던 사람들도 때로는 똥고집을 피우고속을 썩인다그렇다고 그걸 일일이 화낼 수는 없다공대장의 분노는 정말 중요한 칼이라서 반드시 둘러 엎어야할 때만 휘둘러야지아무 때나 꺼내서 가볍게 쓰다가는 분노가 아니라 짜증이 될 뿐이다그러므로 꾹꾹 눌러 참는다그러다보면 속이 썩는다미움의 독이 고인다이 독이 더 커지기 전에 나눠가질 사람을 찾아야 했다혼자 안고 있다가는 언젠가 펑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독을 나눠가질 사람은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공대 관련 일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고 많은 상의를 했던 건 물론 메인탱커와 각 클래스 팀장들이었지만이건 절대로 그들과 공유할 수 없는 문제였다왜냐면독을 나눠가진다는 것은 곧 전염시킨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잘못하면 독이 퍼지고이건 공대를 분열시킬 수 있다공대의 중요한 주력들과는 이런 문제를 나눠선 안된다잘못하면 따돌리기불신을 조장할테니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한참 전에 무대에서 퇴장했던 전임 공대장이었다낮시간대의 공대를 뛸 수가 없어서 다른 시간대로 옮겨가고이따금 쉬는 날 도우미를 와주곤 했던 전임 공대장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런 저런 공대장의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었을 것이다그리고이 친구가 가장 훌륭했던 점은한참 울화가 치밀어서 한바탕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때 그냥 잠자코 귀를 기울여줄 뿐같이 덩달아 분노하거나 내 분노를 어리석다고 탓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냥 들어주고 적당히 고개 끄덕여줄 뿐이었다다 듣고 나서는 주로 이런 평가를 했다. (...)

전임 공대장진짜 욕 잘 하시네. (...)


내가 어떤 사람을 얼마나 미워했고 얼마나 화를 냈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그냥 저 평가만으로 그 내용의 수위를 짐작하길 바란다. (먼산중요한 건 그 욕의 등급이 아니다! (화제 돌리기그렇게 한 번 울분을 해소하고나면 조금 진정이 되었고그 다음에 그 '미운 사람'을 다시 보게 되면 그 과분한 (..) 욕 때문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스트레스도 이미 해소했고조금이라도 더 공정한 태도로 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신기하게도 그렇게 불편해했던 상대와 기묘한 신뢰 관계가 생기기도 했다애초에 타입이 아닌 사람을 좋아하게 되기는 힘들지만나는 저 사람과 다르고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둘 사이에 지켜야할 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의외로 관계의 룰이 생긴 셈이다사람과 관계 맺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한 개안을 한 셈이라나름대로 인생공부가 되었다 싶기도 하다

40
명이 넘는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가장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공대장에게는저런 '대나무숲'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다그러니혹시라도 공대장이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다면부디 그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용서해주기 바란다그가 그 미움을 공대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은 최소한 자기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우연히 자신이 바로 그 '대나무 숲'으로 간택된 사람은죽을 때까지 함구하는 것이 공대를 위해서나 공대장을 위해서나 가장 좋은 선택이다그리고대나무숲을 필요로 하는 공대장들이여. ....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사람 잘 보고 골라야 한다그리고 창구는 단일화해라
 (...)

대나무숲을 사용한 것은 공대장 취임 초기의 일이었고점차 그 역할에 도취되면서부터는 실제로 공대원을 '미워'한다는 감각 자체가 점차 퇴화되었다신기한 일이었다분명히 그쯤 같이 굴러먹다보면 대부분의 공대원들이 갖는 장단점들이 눈에 보인다심지어 가장 신뢰하는 메인탱커나각 클래스 반장들의 경우에도 저마다 어떤 단점과 장점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단지 알고 있을 뿐그로 인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은 촉발되지가 않는 것이다


타인을 대체로 귀찮아하는 내가그 수십명의 사람들을 하나도 귀찮아하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가장 놀란 것은 나였다이따금 나는 자문해보곤 했다나는이 많은 다수의 인간들을단지 '같은 공대원'이라는 것만으로 '사랑하게된 것인가으윽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대장을 하면서한 번도 '우리 공대를 사랑합니다라든가 '공대원 여러분 사랑해요같은 멘트는 진지하게 사용해본 일이 없다가끔 있긴 한데주로 삥 뜯을 때였다 (...이럴 때는 써줘도 된다 -_)

나는 한 사람이 다수의 조직을실체 없는 개념을 사랑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조직과 개념은 이성적 판단의 대상이어야지 감정적 대상이 아니다감정만큼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없다보답을 원치 않는 사랑이란 없다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나는 그 누군가가 나만큼혹은 나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하기 마련이다그것이 한 인간이라면그나마 답이 나온다나는 그에게 사랑을 받거나혹은 거절당할 뿐이다.

 

그러나 다수의 조직을 상대로 하는 사랑은 다르다
그것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38. 당신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 2/2

조직에 대한 헌신의 뒷면은 조직에 대한 소유권의 주장이다그래서절대로 해서는 안되는생각해서는 안되는행해서는 안되는 것의 세번째 항목을 이렇게 꼽는다
.

세번째공대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나 없으면 안된다내가 이만큼 키웠다내가 얼마나 이 공대를 위해서 헌신했는데누구보다도 많이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한 공대장이나 운영진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공대장을 맡고 나서 초기에메인탱커가 각 인던 네임드 공략법을 연구하고 있을 때 나는 각종 와우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서버다른 공격대들이 앓고 있는 문제점들을 훑어보았다그리고 조금 놀랐다와우는 게임등급상 초등학생이 할 게임은 아닌데다가공격대 활동까지 할 정도면 어느 만큼 집단 생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 연령대의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아주 초보적인 부분에서의 실수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의사결정의 과정이 터무니없이 생략되었다거나기본적으로 대화 자체가 부재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격대 활동 자체가 처음이었던 데다가독야청청 방구석에만 처박혀 살던 호젓한 인생이었던지라 도대체 요즘 애들 -_-;;;은 조직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공대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그 모든 것이 '나만큼 공대에 대해 생각한 사람이 없고' '나만큼 고민하는 사람도 없으니' '이런 문제 정도는 나 혼자 결정해도 된다'는 식의 아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물론 그렇게 혼자 '고생하게내버려둔 공대원들도 잘한 것은 없다한 나라의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공격대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 일을 하게 버림받고대나무숲 하나 없이 혼자 끙끙 앓아야 했던 공대장과 운영진이 그 헌신만큼 공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어찌 보면 감정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억울하겠지그렇다고 '그러니까 공대 자산은 전부 내꺼이런 식이 되면 뭐 --;;; 웃기는 노릇이지만공대 규칙의 변경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 공대원들이나 운영진의 의사를 묻는 과정을 생략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 가장 좋은 쪽으로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빠른 공략을 위한 현명한 판단인지아니면 단지 독선인지 분간하기는 참 쉽지 않다이런 경우 판정법은 사실 간단하다공대원들이 다 싫다고 하면 독선인거고다 좋다고 하면 현명한 판단인 거다. (...) 무척 바보스러운 규칙이지만원래 민주주의가 그렇다바보스럽고 더디게 가는 제도다

이 금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민주주의가 아닌왕정으로 롤플레잉하는 공대를 만들거나들어가면 된다그러면 소유권 주장해도 된다실제로 소유권이 행사되기도 할 것이다그런 공대가 의외로 많다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그 사람의 카리스마로 유지되고그 사람이 게임을 떠나면 사멸하는 공격대사실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게임이니까현실과 다른 제도를 체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공대는 그렇지 않다그렇지 않은데도 애착과 소유권을 느끼게 되면독선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게다가이것이 게임이기 때문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추가된다소유권은 공대의 발목만 붙잡는 것이 아니다공대의 목에 개줄을 거는 사람은자기 목에도 개줄을 걸기 마련이다이 문제를 눈치채고 나서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마지막 날까지,이 공대가 내것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물리게 될 테니까.

어느날나의 수고에 감사하며한 공대원이 말했다아마 제도 변경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공대원이 공대는 이제 에덴님 공대에요그렇게 말씀하셔도 돼요강경하게 밀고 나가셔도 돼요믿고 따라 줄 겁니다


이 말을 들을 때나는 절대반지의 시험을 받는 갈라드리엘 마님이 된 기분으로 그 공대원의 신뢰에는 감사했지만그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이 공대가 내것이 되면나 역시 이 공대의 것이 된다그러면 내게 와우는레이드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된다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가 없게 된다나는 내가 언젠가 필요로 할 자율 만큼을 공격대에 주었다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있을 만큼의 자율을공격대를 위해서가 아니라나를 위해서다그리고 40명의 바보들은, 40명의 ''나의 자유는 곧 40명의 자유이기도 하다.


네번째희생하지 않기

이쯤 읽어보면 뭔가 오묘한 모순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일하지 말 것미워하지 말 것소유하지 말 것사실공대장 일 많다안할 수 없다그런데 하지 말라고 했다미워하지 말 것사람인 이상 누군가 미운 사람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그런데 하지 말라고 했다소유하지 말 것독선은 아니더라도 공대장을 하는 동안 일정한 소유지분공대에 대한 발언권책임감등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하지만 소유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절대적인 금기가 아니다그런데도 '금기'처럼 여겨야하는 이유는 이렇다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공대장이나 운영진들이 짊어져야할 책임이 조금은 더 많다이 과부하 때문에절제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선을 넘게 된다그러므로 과도한 선을 넘지 않게원칙에서 어긋나지 않게항상 자신에게 주지시켜야할 가장 큰 원칙이자공대원들 역시 함께 지켜줘야할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꼽는 '희생하지 말 것역시 마찬가지다실제로는 언제나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그걸 인정하지 않을 것티내지 말 것.

오랫동안 공대에서 활동했던 사제 B가 어느날 폭발했다공대 창설때부터 쭉 스트레스가 심한 사제 역할을 하면서 쌓였던,타클래스에 대한 불만부터 시작해서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진 모양이었다격렬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당연히 그것에 반대하는 이야기들도 쏟아져나왔다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헌신과 희생그동안 바친 시간에 대한 설움을 털어놓는 사제 B에게나는 결국 끝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그 사제 B 때문만은 아니었다당시 공대 채널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설전을 지켜보고 있었고슬슬 사제 B의 반대편에 맞서던 사람들도'자신의 설움'을 털어놓기 시작한 분위기라진화를 위해 그래야 했다

제가공대장을 관두는 날까지 절대 안하려고 했던 이야기 지금 해드릴게요

공대를 위해 이만큼 희생했다이만큼 더 열정을 바쳤다
... 
'
저보다더 그렇게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분 지금 계시면 나와보세요
.
(
잠시 기다렸다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 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 누가 나왔으면 내 손에 죽었다
 )
정말로 이 말은제가 공대장이니까운영진이니까 각별히 더 희생했다그런 말은 마지막 날까지 제 입밖에 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다들 조금씩은 희생하고 있고누구나 다 나름대로 서러운 건 있으니까요
.
각자 서러운 것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답이 없어요서로 상처 주는 것밖에 안남아요
.
어차피 게임이고자기 즐거우려고 하는 희생입니다남 위해서 하는 희생도 아니에요
.
서로 고생하고희생하는 거 모르지 않아요사제님들 특별히 더 고생하는 것도 알아요버프 돌리는 것만 해도 일이죠그런데 그건 클래스 역할이에요단지 알아줄 수 있을 뿐이지그걸 대신해줄 수도 없어요애초에 그걸 하려고 시작한게 게임이고 레이드니까요
.
정말로 마지막날까지 이 말은 안하려고 했습니다제가 이 말 꺼내기 시작하면 전부 자기 서러운 이야기만 하실 테니까요.지금 어쩔 수 없이 말했습니다그러니까지금 들은 이야기는 다 잊어주세요

전 희생한다고 생각 안해요남을 위해서 게임한 거 아니니까요
.

상처는 남았지만그날의 싸움은 거기서 겨우 진화됐다폭발했던 사제 B는 잠시 후 진정하고감정을 수습한 뒤에 '제가 선후를 잘못생각한 것 같네요남 위해서 게임하는게 아닌데...' 하고 귓말을 건네왔다얼마 뒤사제 B는 공대 생활을 정리했다아마도 자신을 위한 게임과 남을 위한 게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한계가 왔으리라그동안 쌓인 포인트로 유달리 좋아했던 치유량 증가 아이템들을 차근차근 다 획득하고거의 남기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0점에 가깝게 포인트를 맞춘 뒤 마지막 셋템을 완성하고서 공대를 떠나는 사제 B를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편으로는 숙련된 사제를 잃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사제 B에게는 그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공대장의 입장으로는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공대원을 '힘들면 가세요성격 안 맞으면 못하는 거죠~'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저건 꼭 등 떠미는 것 같잖아 --;; 공대장이 해야할 말은 언제나이 공대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당신은 이 공대에서 의미있는 존재다라는 것이다그게 '공격대'가 공대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나머지 이야기는 개인인 내 안에 감추고상대가 판단할 여지만을 남겨두어야 했다개인인 나는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한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성격도 다르고처지도 다르고역량도 다르다그건 당연한 일이다자신에게 맞는 만큼만 바치고그만큼만 견디고못 견딜 것 같으면 떠나면 된다

그래우리는 서로 희생할 필요가 없다아니희생하더라도 그건 감당할 정도만 하면 된다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보통 희생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그 이상을 넘어설 때는어떤 상황이든 자유롭게 보내주는 것이 정상이다게임이잖아
!

그런데또 다른 종류의 희생도 있다이건 참 어찌할 수 없는 희생이다이 희생의 목적어는 현실생활이다고백하자면나는 사실 현실을 희생시킬 일이 없다놀고 먹는 인생이라 현실에 일이 없어서 현실과 놀이의 영역 다툼을 이미 오래 전에 끝내버렸기 때문에더는 그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그래서다른 사람의 예를 들 수 밖에 없다사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고민했는데양해를 기대하면서 그냥 해야겠다. -_-;;

검은날개 둥지의 공략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레이드는 무난하게 흘러갔는데뭔가 분위기가 오묘하게 달랐다.공대원들은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 느낌에는 그러했다뭐가 달랐는고 하니메인탱커가 유달리 말이 없었다속으로 생각하기를오프라인상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었다
레이드 후반쯤에 한 공대원이 조퇴를 했다부인의 생일이라 일찍 나가서 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다들 축하해주고 그 공대원을 보내줬다그리고 얼마후레이드가 종료되었다

레이드가 끝나면 언제나 하던 메인탱커의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인사조차도 어딘가 맥이 빠진 듯이 들렸다오프라인의 문제까지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라서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만의 하나 내가 알아두어야만 할 문제 (다음 레이드에 결석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거나)일지도 몰라서결국 묻고 말았다혹시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둘러대겠지하고 생각하면서
.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
그분

그분별로인걸로 보였나요? (허걱욧이 아니라 요다 요 ... ;;)
.
그분에고

그분심려끼쳐서 죄송합니다티 안나게 했어야 했는데.

잠시 후에메인탱커는 털어놓았다오늘이 가족 중 한 분의 기일이었다고


더 설명을 듣지 않아도게이머로서 나는 저런 경우에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죄책감을 십분 이해한다게임에서의 약속은 언제나 후차적인 것현실에 비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생산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현실의 일이 아주 다급한 건 아니더라도 약간이나마 무게가 있는 상황일 때 게임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우울해진다


그날한 공대원은 부인의 생일이라고 조퇴를 했다특별한 날특별한 상황이다구속력은 다를지 몰라도누군가에게는 똑같이 특별한 날이었을 수도 있다그러나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비울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만약 내가 메인탱커에게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메인탱커 없이 레이드를 진행하려고 했을까한창 공략이 진행중이던 때에아무 사유도 말하지 않고 지휘자가 출석하지 않았다면공대원들은 불안해했을 거다그렇다고 사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했을까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그건 엄연히 한 사람의 사생활이니까.



몸이 조금 안 좋아도친구나 애인과 싸웠어도어쨌거나 당장 컴퓨터 앞에 앉을 힘이 된다면 책임자들은 정시에 공격대에 참여해야만 한다아주 작은 희생아주 사소한 헌신일 수도 있다정말 컴 앞에 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천하에 없어도 못오는게 당연하니까힘겹지만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올 수 있었을 테니까정말로 작은 희생사소한 헌신이다.

하지만 그 작은 희생사소한 헌신은공대를 유지하는 힘이기도 하면서또한 많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일도 희생이다헌신한 만큼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할 권리를 획득하기도 한다집단에 대한 소유욕 역시희생과 헌신에서 비롯된다.슬프고우울한그러나 피할 수 없는 함정이다지금 당장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런 작은 희생,사소한 헌신이 적체되면 노후한 모든 공대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그러므로희생이 쌓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나도다른 누구도.

아마도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벨라를 넘고용기대장을 넘고화염아귀를 넘으면서
,
검은날개 둥지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지던 그때
.
우리는 은밀히

다음 투톱 체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대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또 다른 전사와공대장을.

 

39. 공격대를 떠나는 사람들

*
이 챕터의 제목은 
어슐러 르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따온 것이다그리고용기대장과 벨라전 동영상을 만든 뒤화심과 오닉시아를 종합해 만들었던 동영상도 여기 덧붙인다이 글과 비슷한 내용의 것이기에. BGM은 Our farewell.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공격대를 떠날까그리고 떠나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공대장으로서 나는늘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는 역할이었다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잡지 않았지만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은 잡아야 했다이건 우유부단한 태도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돌이켜보니,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내가 붙잡으려고 했던 공대원은 딱 다섯아니 여섯명이었다줄잡아 백 오십명 정도는 거쳐갔을 공격대에서오직 여섯 명뿐이다그외의 사람들은 떠나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해왔을 때안타깝더라도 보내주었고이제부터 하려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붙잡았던 여섯 명과붙잡지 않은 나머지 수십 명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나는, (공격대장이 아니었던 때이긴 했지만초대 공대장이 떠나려고 할 때 정말로 간곡히 붙잡았다왜냐하면그가 만들고 기초를 잡았던 공격대를 통해서 진짜 고통과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떠나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상태로 떠나는 것은 공대가 아니라 그 초대 공대장에게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열심히 붙잡았지만실패했다.

2
대 공대장이 떠난다고 할 때는잡지 않았다그건 친분이나 애정도의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2대 공대장이 떠나는 사유는 그만큼 급박했던 것이고비록 라그나로스를 잡지 못하고 간 것이 안타깝긴 해도 그는 최선을 다 했고떠나야할 일이 생겨서 떠난 것이니까.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두번째로 붙잡은 사람은 사제다네파리안 공략을 얼마 앞둔 어느날공대 결성 초기부터 메인힐러와 사제 반장의 자리를 지키던 이가 유학 준비를 위해 곧 그만두어야 한다고 알려왔다비슷한 이유로 떠나던 사람들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데이 사람은 붙잡았다딱히 개인적으로 친했던 사이냐면 그렇지도 않다그는 정말로 별 말도 없이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던 타입이었다유일하게 말이 많았던 경우가 전사 A-1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던 그 한 번뿐이었으니이 사람은 정말 네파리안을 쓰러뜨릴때까지만이라도 같이 할 수 없겠느냐고 간곡히 붙잡았다왜 그랬을까생각해보니 이때쯤 나 역시 네파리안을 눕힌 뒤 공격대를 정리할 생각이었고그래서 창설 초기부터 쭉 고생해온 사람들과 함께 네파리안 공략을 하나의 엔딩 지점으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게다가 무던하면서도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이런 공대원이 좀 더 남아주는 것이 공격대에 큰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역시 실패했다

순서는 좀 더 뒤지만세번째네번째로 붙잡았던 사람들 역시 사제다사제라는 클래스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이었는지아니면 그분들이 공격대 활동에서 오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각별히 견디지 못하는 성격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이 두 사제들을 잡은 이유는 동일하다한 사람은 앞서 언급을 한 번 했던 사제 B위에 말한 사제 반장이 떠난 후부터 쭉 메인힐러를 맡아 고생한 사람이다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다른 현실상의 이유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지라 붙잡았다한 번은 잡을 수 있었지만두번째로 그가 스스로 결심을 굳혔을 때는 잡을 수 없었다그쯤 되어서는 나 역시 잡지 않았다이제는 정말로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을 때니까

사제 C의 경우는사제 반장이자 메인힐러였던 사람이 떠난 후 사제 반장의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다책임감도 많고 걱정근심도 많은 성격이라 잔소리도 많은 타입이었다.(!) 이것 역시 공격대에 대한 나름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가끔은 이런 애정이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킬 때도 있다그렇게 돌아온 충돌에 상처를 받기도 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기 때문에그런 문제로 공대를 떠나려고 했을 때 열심히 붙잡았고다행히 성공해서 지금도 같이 레이드를 뛰고 있다.

공격대장으로서 떠나는 공대원을 붙잡는 심리의 저변에는 세 가지가 깔려 있다하나는 오랫동안 같이 레이드를 즐겨온'동지'가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슬픔이고다른 하나는 사실상 그런 이탈이 공격대의 전력에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세번째는이건 어쩌면 나같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결벽증일 수도 있는데어떤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고 '중간에그만둔 것 같은 어정쩡한 엔딩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다물론 그 엔딩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지만, 40명의 '게임'을 운영하던 사람으로서는 누구 하나 그렇게 못다한 이야기를 남겨두고 가는 것이 찜찜하기 그지 없다.

되돌이켜보면나는 각별히 고생한 사람들이 찜찜한 엔딩을 남기고 공대를 떠나는 경우에 한해서만 사람들을 붙잡았던 것 같다현실생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라면 잡지 않았다물론 떠날 때는 누구나 현실생활의 핑계를 조금씩 대지만그게 정말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있다가끔 돌이켜보면그렇게 잡은 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좀 못할 짓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사실 인간의 한계나인내심을 꼭 레이드를 통해서만 확인해야할 문제는 아니다재미있는 게임이 와우만 있는 것도 아니고레이드를 해야만 와우를 즐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공대장은 저렇게 떠나려는 사람들은 잡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왜냐하면 저렇게 잡는 행위는 반쯤은 나의 생각이지만 반쯤은 공격대라는 무생물체의 의지이기도 하다공대장은 공격대라는 무생물체의 대변자이고개인의 호오취향과 무관하게 공격대가 필요로 하는 어떤 틀과 한계그리고 소속원의 성취를 생각하면서자신이 행사해야 마땅할 <인력>을 언제나 잃지 않아야 하는게 아닐까공격대가 힘들고레이드가 스트레스를 준다고 해서공대장 자신마저도 그렇다고 해서떠나는 사람들을 그냥 무중력으로 떠나보낸다면일말의 가능성마저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런 고로붙잡는 행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아직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만다른 별이 끄는 힘이 더 강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대장이 행사하는 인력은 그를 이 별에 발붙이고 남아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때로는 그렇게 붙잡아주는 말 한 마디를 바라고 떠나겠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누군가가 나를 붙잡아주는 것으로 인해 자신과 이 공격대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고 말이다
.
무엇보다도그렇게 붙잡아봤자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난다그건 그들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다섯 번째로 내가 붙잡았던 사람에 대한 다소 긴 이야기를 하자사실 '여섯명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글에서는 '다섯명'째까지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은 전사B였다다른 공대에서 사제로 활동했고전사A-1 이상으로 까칠했으며언제나 누군가와 좌충우돌 싸우고 있던 사람그리고 지금까지 공격대를 거쳐간 사람들 중에 2대 공대장과 더불어 나잘나 왕자 1,2호라는 별명을 몰래 지어주고 놀렸던 사람이다
. (...) 
재능도 감각도 있지만 자신감이 그보다 더 위에 있고타협과 융화 스킬은 아예 찍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성격의 친구라,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 공격대에서는 하루도 마음 조용할 날이 없었던 그가어느날 레이드 중에 갑자기 귓말을 보내서 그만두겠다고 했다그것도 하필 토나오는 용기대장 코스 진행 중에 온 귓말이라 각별히 지옥이었다
. -_-;;
이유 또한 참 그 다웠다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공대원 누구가 아이템 문제로 자신을 약올린 것에 열받았다는 것이다. orz (.......) 집단 생활에 정말 맞지 않는 까칠한 성격인 것은 분명한데나는 그런 식의 성질부리기에 나름대로 익숙했다아주 가까이에서 저런 케이스를 늘 지켜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
백림원 힐끔
세상이 다 그게 맞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뿐이다꼴보기 싫은 것과는 절대로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는다벌컥! <-- 이런 정서를 나는 이해한다나 역시 그런 성격이 있으니까이해하기 때문에 비난할 수는 없는 문제였지만그래도 공대장의 입장에서는 "그래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용기대장 코스의 그 미칠 듯한 랙속에서역시 미칠 듯한 귓속말로 열심히 붙잡았다ㅠㅠ 이런 식으로 가는 건 말도 안된다성질 좀 죽여라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해서 풀자.제발 좀하지만 예상대로 그는 떠났다정서는 이해하더라도 판단은 성급했다고 생각했고성급한 판단은 분명 아쉬움과 후회를 남길 거라는 생각도 했다그래서 공대에 남아있던 그와 친한 사람들그리고 '본의 아니게그를 약올린 사람이 되어버린 공대원에게만 이 일의 전후를 알리고그는 일신상의 이유로 공대를 탈퇴한 것으로 처리했다


전사 B의 사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그로부터 얼마 뒤이 친구는 공격대가 전사를 필요로 하던 시기에 역시 예상대로복귀했다한 입으로 두말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을 무척이나 쪽팔려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공대장이 고생하는 것 두고 볼 수가 없어서라고 복귀사유를 우기던 (...) 모습 역시 귀여웠다. (먼산

그런데이 친구와 공격대의 인연은 참으로 험난했다복귀해서 일주일이되었을까 말까 한 어느 날갑자기 카페에 기습적인 전사 B의 사퇴 게시물이 올라왔다이유도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그저 떠난다는 말만 있었다또 저번처럼 누가 삐지게 한건가 싶어서 불러다 캐물어보니사제로 활동하던 공격대와 우리두 공격대를 동시에 뛰면서 규칙의 충돌이 일어났고,어느 쪽도 버릴 수가 없었던 그는 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양쪽 다 공대를 떠나고양쪽 다 캐릭을 지우겠다고 말이다이것 역시 참 그다웠다
. -_-;
나는 게임 시간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한쪽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더라도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말라고 권했다우리 공대를 떠나더라도 괜찮으니까 '적절한판단을 하라고그때까지는 양쪽 다 지우겠느니 하는 소리는 말라고 했다.

전사B: 하지만 너무 쪽팔리잖아요복귀해서 정말 안퀴라스도 공략하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실컷 잘난 척 해놓고 벌렁 그만둬버리다니
살다보면 쪽팔리는 일이 한 둘인가. -_-;; 전사B님 잘 아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고민 있다는 거 이해할 테고 모르는 사람들한테야 쪽을 팔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그냥 맘 편하게 선택해요
. -_-;;
전사 B: 다른 공대는 내가 지금 이 공대보다 훨씬 오래 뛴 곳이라서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어요
.
그럼 거기만이라도 열심히 해요안 섭섭해한다니깐
. --;
전사 B: 그럼 내가 공대장님 도와준다고안퀴라스 같이 정복해보자고 한 말이 다 뻥이 되잖아요. -_-;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지만 내가 믿는 사람들한테 거짓말 쟁이가 되는건 못참겠어요
.
: .......
전사B: 이것도 저것도 못택한다면 둘 다 버린다이게 내 스타일이에요
.
: (쿠어어어어어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 ㅠㅠㅠㅠㅠ 이 녀석은 분명히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삼각관계에 처하면 사랑하기에 둘다 포기한다 이러고 절규하면서 차 몰고 벼랑으로 떨어질 거야 ㅠㅠ )

어쨌든간에 설득해서감정적인 사퇴글은 지우게 하고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를 권했다타공대와는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다시 두 공대 모두 활동이 가능해져서 겨우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싶던 다음날문제가 발생했다이건 전사 셋템 입찰과 관련된 문제로 불거진 것이라 더욱 복잡했는데말하자면 상황은 이러했다.

1.해당 사퇴글이 새벽에 잠깐 올라왔다가 내가 제일 먼저 보고 재빨리 접촉을 시도해서 설득하고 사퇴 의사를 취소시킨 뒤 글을 삭제시켰으므로전사 B는 탈퇴자가 아닌 정규공대원으로 나는 간주했다.
2.
잠깐 올라왔을 때 글을 읽은 공대원 소수는 전사 B가 탈퇴를 한 것으로 생각하고 , 다음날 레이드에 전사 B가 온 것을OB가 도우미 온 것으로 판단했다더구나 전사 B가 전사 채널에 입장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3. 
라그나로스에서 전사용 격노 아이템이 나왔을 때 전사 B가 입찰했고포인트 우선순위에 의해서 전사 B가 해당 아이템을 획득했다
.
4. 2
라고 생각했던 공대원이 의문을 품었고문의를 해왔다.

나는 생각했다.

1: 어떤 사유가 있건간에 사퇴글이 가볍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 것은 공대 규율의 측면에서 볼때 문제가 있다아무도 못봤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그 글을 본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는 묻어놓고 갈 수가 없다그러니 밝혀야 한다.
2: 
하지만 저런 사연을 늘어놓는 것은 정서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자칫하면 타공대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까칠한 성격의 전사B는 그런 고백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 자체에 울컥해버릴 것이다그는 같은 공대원이라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선을 딱 그어놓고 있는 성격이니까
.
3: 
그러므로설렁설렁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가는 다음 둘 중 한 가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묻어놓고 가려고 하면 말썽 많은 전사 B를 비호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
감정에 호소하듯이 이 사람 나름대로 고민 많아서 그랬던 것이니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면도마 위에 올라가 있던 전사B가 지 성질에 못이겨 판을 둘러 엎을지도 모른다. (무협지에 나오는 성질 까칠한 남자애들은 해명 한 마디 하는게 자존심 상해서 종종 절벽 아래로 떨어지곤 한다. -_-;;)

한 공대원의 감정적인 행동에 대한 '공정한결정과전사 B의 자존심 양자를 다 고려해야만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그래서전사 클래스 회의를 소집한 다음일단 까칠한 태도로 '내가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주마라고 나서려는 전사 B의 입을 막고 (...그 입으로 해명하면 또 까칠한 소리 나올게 분명해서상황 설명은 내가 했다타공대와 이중활동에 트러블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양쪽 모두 캐릭을 지우고 떠나겠다고 벌컥해서 쓴 글이었다상황을 조사해보고 내가 일단 사퇴와 캐릭 삭제 모두 중지시켰고대화로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권했다고.
그리고 전사B에게는 공대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지금까지 두 번째인데항상 판단이 너무 감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은 문제다지금까지는 넘어갔지만세번째는 없다그러니 또 다시 이런 충동이 일어날 때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라라고 전사들이 보는 앞에서 이야기했다일종의 마지노선을 그어준 셈이다


이런 말을 듣는 전사들의 마음 속이 어떠했을지는 다 알 수 없지만믿어마지 않는 노대 전사 F가 상황을 매끄럽게 마무리해주었다


전사 F: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구요아까 전사 B님이 전사 채널에 들어와 있지 않아서 그런 전후 사정을 못듣다 보니까 오해 생긴 것 뿐이네요전사 B채널 꼭 들어오시고돌아온 거 환영해요앞으로 더 잘 해보죠
.

이렇게 해서전사 B의 두번째 탈퇴 소동은 마무리 되었다나는 세번째는 없다고 했다그리고 좀 더 세월이 지난 훗날전사 B는 결국 세번째의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레이드에 지쳤고다른 방식의 게임 라이프를 즐기겠다면서 그는 떠났다세번째의 탈퇴선언에나는 약속대로 그를 잡지 않았다
.

전사 B와 나눴던 대화의 한 토막이 생각난다.

그래도 어중간하게 뭔가를 끝내면 좀 아쉽지 않아요그게 라그나로스든네파리안이든쑨이든뭔가 목표를 정해놓고그걸 성취한 다음에 멋지게 떠나야죠그래야 좋은 엔딩이죠.

전사 B: 아뇨
.

전사 B: 레이드에는 엔딩이 없어요끝이 없어요


전사 B: 몹을 잡아서 끝을 내려고 해도또 새로운 인던 나오고또 새로운 몹 나오고


전사 B: 레이드의 엔딩은요자기가 끝내는 순간이 엔딩이에요.

이기적이고편협하고감정적이고좌충우돌하던 전사 B레이드 엔딩에 대한 이 말에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그래온라인 게임에는 엔딩이 없다자신이 게임을 끝내는 순간이 바로 엔딩이다자신이 레이드를 끝내는 순간이 바로 엔딩이다.

하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마음이 견딜 수 있다면현실과 균형을 잡을 수만 있다면스스로 맺는 엔딩의 끝은 가능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누군가와 싸워서무엇인가 마음에 안들어서무엇인가에 지쳐서 맺는 엔딩이 아니라자신만의 목표를 정하고그 목표를 성취해냈을 때 멋지게 떠날 수 있다면 가장 좋은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충분히 만족하지 않는다면언제나 남은 미련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니까그리고무엇보다도 불만족스러운 엔딩은 약간 시시하니까
. ^^

그래서네파리안을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던 그 무렵메인탱커와 다음 레이드 일정과 필요한 물약 준비에 대해 의논하던 중에 나는 문득 말했다.

요샌 말이죠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와우의 엔딩을 어떻게 낼까하는 거에요.
그분허걱

그분놀래라
그분저도 요새 그 생각 많이 하는데.

그리하여공대장/메인탱커를 그만둘 꿍꿍이를 각자 몰래 하고 있던 투톱은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가장 먼저 의논한 것은 차기 메인탱커는 어떤 사람이 될까하는 것이었다사실이렇게 마음으로 정해놓아봤자 계획대로 되기 어렵다는 것에는 둘 다 동의했다우연개인의 사정공대의 흐름이 더 많이 영향력을 미치지미리 짜놓고 어쩌고 하는 것은 대체로 무의미해지기 쉽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우리들이 공대장/메인탱커가 된 것도 우연과 필연의 조합에 의해서가 아닌가하지만 그렇다고 준비 안할 수는 없다진인사대천명이니까우연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해도사람이 할 수 있는 예측과 준비는 거쳐야 한다그래서

우리는 
마치 적벽대전을 앞둔 주유와 공명이 조조의 대군을 상대할 전략의 묘책을 의논할때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처럼

각자 다음에 공대의 전술을 이끌어갈만하다고 여긴 사람의 이름을 대기로 했다
.
서로 말하고
,
'
했다
.
둘 다 같은 사람을 지목한 것이다
.
그 사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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