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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서] 진산의 와우 공격대 이야기 (WOW) 25-32편 - 펌금지입니다. 게임 이야기

진산님과 연락해서 이 글을 여기에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단, 다른 곳에 퍼가는 것은 절대 불가 라고 하십니다.
좋은 글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12월 좋은 리더가 되는 길 - WoW 의 공격대 이야기 이라는 글을 올렸었습니다.
옛날 블로그를 정리하다가 원문 링크를 열어보니 없어졌더군요.
이 분 덕분에 웹 아카이브에 자료가 꽤 많이 정리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지만
이게 언제 없어질지 몰라서 제 블로그에 옮겨 놓습니다.
저작권 부분이 걱정되는데 문제가 될 경우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퍼온글은 inven 게시판(1), inven 게시판(2) 에 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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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한 사람의 아래만인의 위.

검은 날개 둥지의 첫번째 네임드는 폭군 서슬 송곳니다보통의 경우두번째 네임드인 벨라스트라즈에서 많은 공대가 좌절의 벽에 부딪치고첫 네임드인 송곳니는 쉽게 돌파하는 편이라고들 한다이를 테면 화산심장부의 첫 네임드인 루시프론이 일종의 맛보기라면 두번째 마그마다르에서 화산심장부의 초심자들이 처음 난관에 부딪치는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그런데우리 공격대는 기묘하게도 폭군 서슬 송곳니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송곳니 때문에 지체했다기 보다는이 시기가 공대 전환의 시기였기 때문에 지체했다는 것이 옳다그런 상황에서도 조용히 새로운 체제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송곳니는 좀처럼 해결이 안되지만 화산심장부의 공략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던 어느 날
.

메인탱커에게 레이드 진행을 다 맡겨놓고 팽팽 놀면서 잡담 채널에서 수다만 떨던 나는점점 말수가 줄어들어가는 메인탱커를 보고 약간 양심이 찔렸다아주 약간. (...) 메인탱커는 초기의 ''체가 점점 줄어들고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된 상황이었다버프해주세요/다음 풀/거리 유지/서브 사냥개 대기/힐포인트 2파 전사님에게로... 등등

'
.. 조금 미안한걸싶어져서 한 마디 했다.

공대장나는 팽팽 노는데 멘탱님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신다. ~_~ 아이 미안해라..

그러자진행과 관련된 오더만 뱉던 그분 왈.

그분그게욧 <=== 갑자기 옛시절로 회귀

그분상처님이 저한테 인수인계해주시면서 <=== 잊혀졌을까봐 다시 말하는데, 2대 공대장겸 메인탱커다.
그분메인탱커는 과묵해야 한대욧
공대장: ....왜요?
그분그래야

그분카리스마가 있어보인다구욧

........... 잠시 공대 채널은 뜨악한 침묵에 휩싸였다
......
....
...

누군가 용기 있는(...그리고 냉혹한사람이 한 마디 했다
.

누군가: ..... 그렇게 말한 상처님도 그다지 카리스마가 있었다고는 (..........)

...... 무언의 동의 (...)
...... 
그리고 물밑에서는 벽을 두드리며 웃느라 죽어가는 사람들 (...나만 그랬나
?)

여기에 결정타

그분: (자랑스레효과가 있지 않았나욧? '';
............ 
누군가아니 사실 과묵해서 카리스마가 넘친다면 차라리 서브 탱커님이 (...)



사실 카리스마라는게 뭔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자신의 말에 반박을 할 여지 자체를 없앨 만큼 막강한 독재 파워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뭐가 되도 된다는 신뢰감무수한 사람들이 떠들어댈때도 그 사람의 침묵이 더 무게 있어 보이게 만드는 존재감?

카리스마는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2대 공대장의 카리스마가 유연하고 유들유들한 카리스마였다면 (그래서 독재적인 느낌은 없었다나중에 평가되어 붙여진 것이긴 하지만 신임 메인탱커는 일명 '조용한혹은 '부드러운카리스마의 보유자라고 했다여기에공대의 두 번째 방패를 맡은 서브 탱커도 있었다이 사람이야말로 '조용한'이라는 말보다 '과묵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타입이었는데사실 메인의 역할을 제대로 지켜준데는 이 서브탱커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

서브탱커는 또한 전사 클래스 대표자 역할까지 같이 맡고 있었는데앞서 표현한 전사ABCDE 중에 D에 해당하는즉 당시 전사진 중 가장 늦게 들어온 편인 (그래봤자 공대 출범후 2-3주 후쯤에 합류한 것이었지만아주 조용한 남자 나이트엘프 전사였다.

서브 탱커의 역할이 왜 필요한가그건 대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화심/오닉을 중심으로)

첫째레이드에서 공격대가 상대하는 몹은 항상 단수가 아니다대표적으로 화산심장부의 코스 잡몹 중 용암의 거인 같은 경우는 생긴 것도 엄청 마초-_-;; 스러운 것이 꼭 커플로 다닌다따라서 이쪽도 커플(!)로 상대해야 한다메인탱커가 하나를 붙잡고 있는 사이서브탱커가 잡은 한 마리를 먼저 공대원들이 일점사해서 해치운다빠른 시간내에 화력을 쏟아붓기 때문에어그로가 튈 확률이 많다


둘째설령 단수의 몹을 상대하더라도 해당 몹의 특성에 따라 반드시 '메인탱커'가 어그로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이를 테면 라그나로스의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메인탱커를 넉백시켜버리는데이때 잠시 어그로의 공백이 생긴다서브탱커가 이때 잡아주지 않으면 공대원들은 추풍낙엽이 된다오닉시아의 경우에도얼라이언스 드워프 사제만이 걸 수 있는 '공포의 수호물'이 없다면 주기적으로 거는 공포 마법때 메인탱커는 어그로를 놓칠 수밖에 없다서브탱커는 이때 방어력은 떨어지지만 공포에는 면역이 되는 격노 상태로 어그로를 잠시 넘겨받았다가 메인에게 인계해줘야 한다말한 대로 오닉시아는 도발에 면역이다강제적으로 어그로를 잠시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따라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 메인과 서브는서로가 쓰는 스킬에 의한 누적어그로를 감으로 조절해야 한다서브는 항상 중용을 요구당한다. '메인보다는 적게그러나 '그외 공대원보다는 많게'. 이른바일인지하만인지상의 어그로 획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언제나 비상사태라는 것이 존재한다메인탱커가 몹을 붙잡고 있다가 돌발상황에 의해 누워버렸다공격대에서 어그로 수치를 순위로 표현한다면메인탱커의 어그로 수치가 1위고그 다음은 강력한 뎀딜러이기 쉽다메인탱커의 돌연사 후에 바로 그 자리를 낚아챌 존재가 필요하다혹은 메인탱커의 탱킹 하에 몹 하나를 잡고 있는데 저쪽에서 새로운 순찰몹이 접근 중이다서브는 미리 달려가서 다가오는 몹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대충 '서브탱커'의 기능적 역할인데의무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브탱커에게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어그로에서뿐만이 아니라공격대의 전술 확정 과정에서도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온화한 타입의 메인탱커 옆에 만약 불같고 태양같은 서브탱커가 있었다면 두 사람의 역할이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이 서브탱커는 불이 아니라 바위혹은 산과 같은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던 오닉시아 칠전팔기의 그날사실 물 위에서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가 '연출'되고 있었지만클래스별 채널창,각 공대원의 길드창에서는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 수는 없다그때전사 채널에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고 한다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있기 마련인 '어휴 거기서는 그렇게 탱킹하면 안되는데같은 말이당연히 나왔었다는 것이다. (나는 훗날에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이 서브탱커가 딱 한 마디 했다고 한다. '
믿어줍시다가뜩이나 힘드실 텐데 이런 저런 소리 하지 말고.'

그리고그 이전까지는 각자 다른 후반파의 전사로 별로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는 메인탱커에게 귓말로 한 마디를 더 했다고 한다.

서브힘들겠지만 XXX님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흔들리지 말고 힘내세요.


온화하게 공대를 이끌어가는 메인탱커 옆에는이렇게 단단한 서브탱커가 있었다사실 이 서브탱커에게는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메인탱커가 메인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신뢰와 지원은 아끼지 않았지만,서브탱커에게는 그 반도 제대로 못해줬다그럴 에너지까지는 없었다그냥 서브탱커의 기본 자질을 믿고맡겼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목했다.. ㅠㅠ)

부탱커, Sub 탱커, Off 탱커라고 표현되는 이 2번째 탱커의 자리는언제든 메인의 역할을 넘겨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지만 늘 조명을 받는 자리는 아니다갑자기 메인이 부재할 때는 언제나 서브를 돌아보게 된다서브가 메인 만큼 못해낸다면 '비슷한 역할을 해놓고 못하다니'라는 눈총자격지심에 시달리게 된다서브가 메인만큼 해낸다면그건 메인이 닦아놓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흔히들 쉽게 생각할 수 있다하지만 그건 아니다서브와 메인간의 역할은 다소 다르고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호흡은 단지 말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전사 클래스 팀장으로서 서브탱커가 늘 했던 말이 있다


서브탱킹은 믿음입니다믿음의 탱킹!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닭살의 눈보라에 휩쓸려 몸부림쳐야 했다! /--/ (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
ㅠㅠ 어쨌거나 사나이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다. -_-b(...) 혹시라도 메인의 전술 브리핑에 대한 이의제기가 나올 때공대원들이 전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이건 안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할 때그는 항상 메인을 지지해줬다메인이 붙잡지 않는 몹을 붙잡는 기계적인 의미의 '서브'가 아니었다책임감이 굉장히 커서 가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때도 많긴 했지만대부분의 순간에 공대장보다도 더 메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메인에게는 많은 책임이 따르는 만큼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서브의 자리는스스로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기 십상이다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서브의 자리를 철저하게 지켰던 이 전사가 공대의 체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메인탱커의 역할 수행에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는심지어 그 공격대에 속한 사람들조차도 쉽게 눈치챌 수가 없을 것이다그것이 바로 두번째의 자리두번째의 방패서브탱커오프탱커의 위치다
.

세월이 흘러검은 날개 둥지 공략 동영상 자료를 가끔 다시 재생해보면공대 전사 중 유일하게 나이트엘프 남자 캐릭터였던 (아는 사람은 안다나엘 남자 전사의 어깨가 얼마나 넓은지서브탱커가인간 여자 전사 캐릭터인 메인탱커의 옆에 항상 서있다말도 별로 없었고애교도 없었고 (...), 사나이답게 (?) 의외의 부분에서 소심하기도 했던 서브탱커


가끔 생각해본다만약 운명의 그날전사 E가 아니라 전사 D가 공대의 메인을 맡았다면 그 후의 공격대 이야기는 어찌 되었을까전사 E는 전사 D만큼 그를 믿어주고전사 채널을 적은 말로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공대원들은 비슷하게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의 색깔이 달랐던 전사 D를 전사 E만큼 챙겨줄 수 있었을까나는 전사 E에게 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요구를 전사 D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었을까
?

답은 모르겠다역할이 바뀐 이야기에는 언제나 의외의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니까그럴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고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갔을 수도 있다그 결과는 긍정적이었을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다
.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함이 없다그는 정말 '좋은서브탱커였다메인탱커에게는 '좋은혹은 '나쁜이라는 수식어를 달기 쉽다그러나 '서브'탱커에게는 그러기가 어렵다보통 그들에게는 아무런 수식도 붙지 않는다하지만 우리 공대의 두번째 전사는이런 수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한 서브탱커였다.

 

26. 별전운명의 결정자힐러

나는 성기사다판금 사제다내 계정에는애초의 계정 원주인이 키웠던 만렙 드루이드가 하나 있다그리고 성기사를 다 키운 뒤에 물약 만들 캐릭터가 없어서 하나 더 만들어 키워둔 것이 사제다얼라이언스 힐러 3종 세트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딱히 힐러가 성격에 맞아서 다 키운건 아닌데사제로 플레이를 하다가 누가 '본캐(본래 캐릭터)는 어느 클래스에요?' '성기사인데요라고 하면 대부분 허걱한다. '아니그 답답한 힐러를 왜 또 키우셨어요보통 성기사 하시던 분들은 도적이나 법사 하면서 스트레스 푸시던데
..' 

대부분의 사람들이힐러는 <힘들고/신경쓰는 것 많고/스트레스 쌓이고/재미없는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닥탱>만 하는 전사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지만최소한 전사는 앞에 나서서 이끄는 맛이라도 있다그러나 힐러는 다르다. <모셔갈 땐 귀족모시고 나면 종년>이 되는 것이 힐러라는 거다.

적의 공격력은 높고아의 방어력은 낮기 때문에그 방어력의 모자람을 회복력 - 즉 치유로 메꾸면서 전력 편차를 줄여나가야 하는 레이드 전투에서 힐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진영별 8개의 클래스 중에 퓨어 클래스에 속하는 사제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클래스에 속하는 성기사(호드는 주술사)와 드루이드까지도 '닥힐'을 강요받는다는 것은 위와 같은 레이드 전투의 기본 공식 때문이다아군의 방패는 '하나', 즉 그 순간의 '탱커뿐이다적의 공격은 그 '방패'의 방어력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그러니 우리는 그 단 하나 뿐인 방패를 최선을 다해서 살려야 한다그러므로치유 기술을 가진 자모두 닥힐에 전적으로 복무하기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힐러의 스트레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레이드 소모 물품을 모으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사냥을 해서 돈과 물품을 마련해야 한다레이드에서 '데미지 딜러'의 역할을 하는 클래스는 개인 사냥도 쉽게 할 수 있다그러나 힐러는그들은 대부분 '죽지 않을 뿐' '죽이지도 못한다사냥은 느리다지루하다그런데 힐러의 필수품 일급 마나 물약은 무척이나 비싸다.마나는 떨어지고아군의 피가 바닥을 보이면 돈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도적에게 살쾡이는 '선택'일 수 있다힐러에게 '일급 마나 물약'은 선택이 아니다그걸 먹으면 한 명을 살릴 수 있다그걸 먹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


이러니 와우 커뮤니티에서 힐러들의 불만을 둘러싼 논란 역시 아주 뜨겁다안그래도 힘든 힐러 서럽게 만들지 마라 / 서러우면 관둬라힐러 없이 몹 하나도 못잡는 것들이그럼 힐만 하면 몹 잡히냐다 자기 역할이 있는 거지누가 뭐래서럽게 하지 말라는 거지아쭈 까부냐이 개념없는 사제야너 서버랑 캐릭명 대힐러들이 다 차단 걸면 인던 갈 수 있나 두고보자/님들아 그만들 싸우셈 근데 일마값이 너무 비싸염 (...)


나는 이 모든 논란들이아주 근본적인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힐러가 아닌 자들도힐러인 자들도 마찬가지다양자 모두가 힐러를 '봉사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그것은 마치,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보살펴주고치유해주고살려주는 사람은 뭔가 희생하거나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이건 모두 착각이다

간호사의 시조처럼 여겨지는 나이팅게일이 '위인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그녀가 신음하는 병사들을 보고 눈물 흘리면서 그 상처에 입맞추는 상냥한 마음씨의 천사였기 때문이 아니다그녀는 군대 내에서 전혀 위상이 없었던 '간호병'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전술가였다

어렸을 때 '나는 자라서 백의의 천사가 될 거에요라는 소망을 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희망은 착각의 씨앗에서 자라나지만의외로 큰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될 수도 있다하지만 한 가지는 잊으면 안된다그 나무가 자라났을 때현실에 뿌리를 드리우게 됐을때그 역할을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릴 적의 분홍빛 꿈만으로는 부족하다


비록 게임이지만 와우에서 힐러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만약 '저는 누군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고 싶었어요'라는 소망에서 한 걸음도 더 전진할 생각이 없다면그래서 보살펴주는 희생자 천사 역할만을 하고 싶다면나는 힐러로서 레이드는 뛰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레이드는비록 작은 규모지만 전쟁 게임이다전쟁에 필요한 것은 소녀가 아니다한 사람의 어엿한 병사다위에 나열된힐러에게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스트레스를 견딜 신경이 되지 못한다면레이드라는 컨텐츠는 맞지 않는다.

힐러는 천사여도 좋다하지만 그건 희생자로서의 천사가 아니다. '운명결정자'로서의 천사다북구 신화의 세 여신에 비유하는 것이 좋겠다한 여신은 운명의 실을 풀어내고한 명은 잣고한 명은 끊는다탄생과삶과죽음의 주관자들이다

레이드 전투를 플러스와 마이너스에 의한 숫자 게임이라고 생각해보자몹의 체력이 십만이고우리 방패의 체력은 일만이다숫자 게임은 단순하다우리의 일만을 '유지'하는 총시간 동안 적의 십만을 깎으면 이긴다적의 십만을 깎기전에 우리의 일만이 0점 이하로 떨어지면 진다딜러는 이 중 마이너스의 기능을 한다적의 십만을 깎는 역할이다탱커는 스스로 아군측 '플러스'의 주체가 되지만그가 하는 역할은 플러스의 기능이 아니다그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중간에서 균형자의 역할을 한다플러스를 담당하는 것이 힐러다힐러는 전투라는 극한 상황에서 양수의 영역삶의 영역을 주관한다
.

그런데삶의 동전 뒷면은 죽음이다힐러가 삶을 주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의 주관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나는 힐러를'살리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살리는 역할이 주다하지만 진정한 위기가 왔을 때이 여신은 변할 줄 알아야 한다그때 힐러는 죽음의 주관자다. '누구를 살리고누구를 죽일 것인가'를 결정하는운명의 결정자가 된다.


내가 본 정말 뛰어난 힐러 몇명은이 판단이 가장 빠르고 냉정한 사람들이다그들은 결코 조급하게 힐하지 않는다누군가 다쳤다고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울며 불며 힐하지 않는다실수로 눕혔다고 눈 앞이 아득해져서 내탓이오를 반복하지 않는다자기방어적인 소녀의 눈물 대신그들은 냉정하게 자신의 플러스 기능을 어디에 투척하는 것이 공대 전체를 위해서 가장 현명한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한다

부득이하게 몹이 애드가 되었다혹은부득이하게 메인탱커가 돌연사했다뛰어난 힐러는 이때 바로 다음 어그로를 먹게 되는 탱커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그를 살린다뛰어난 힐러는 동시에 죽어가는 네 명의 파티원이 있다면그리고 현재 남은 몹의 HP 17퍼센트라면자신이 3초 안에 치유할 수있는 최대의 총량과그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힐링 어그로를 계측하고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한다때로는 한 사람을 포기할 수도 있다때로는 모두를 포기하고 한 명만 살릴 수도 있다어떤 경우에든힐러의 판단은 파티의 생사를 가른다공격대급의 전투에서는 이것을 '보통 수준의 힐러'로서는 체감하기 힘들다보통 수준의 힐러에게는 오직 극악의 오버힐로 마나를 텅텅 비우는 것만이 힐러로서 성실하게 복무했다는 자기 위안을 주는 정도다눈이 트이고전황을 볼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낭비하는 힐이 사라진다.

내가 아는 한 사제가 있다. (초창기 공대 유일의 드워프 사제였다어느 날 이 사제와 나그리고 두 무분 전사(...) 이렇게 넷이 남작 코스를 돌았다서버 점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조급한 상황인데도 서로 능력을 잘 아는 편이기에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돌던 중에애드가 났다탱커 둘힐러 둘몹은 많아서힐링 어그로가 튀기 딱 좋은 상황재미있게도사제와 나 둘 다 애드가 나자마자 모든 치유를 일단 중지했다그리고 안전한 위치로 물러나서는 두 탱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탱커 둘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열심히 몹을 때려잡았다그들의 피가 거의 바닥이 될때쯤사제와 나는 그야말로 '깨작깨작힐만 했다죽지만 않을 정도로그렇게 어그로를 조절하면서 치유를 해도 어느 순간엔가는 사제에게로 몹이 갔다방금 전에 소실을 쓴 것을 눈으로 확인한 상황일 때만 나는 그 몹을 내쪽으로 끌어당겼다그러면 잠시 후에는 전사가 와서 그 몹을 받아갔다이 모든 과정에 단 한 마디의 대화도 필요 없었다애드된 모든 몹을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전사 둘이 후 - 살았다 -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사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담담한 투였다.

사제힐러 하면서

사제는 거라고는
사제배짱밖에 없네.


나는 사실 힐러 역할을 은근히 즐기기는 하지만단순한 힐키 난사만으로 끝날 수 있는 전투는 솔직히 졸립다그때의 힐러는 마치 게으른 잠꾸러기 천사같다파티원의 HP바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거기에 무의식적으로 치유스킬키를 누르기를 반복한다탱커들의 장비가 좋아지고 난 뒤 용기대장전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졸려 죽겠다 ㅠㅠ

그러나비록 드문 경우지만 뜻밖의 위기 상황이 오면 갑자기 잠이 깬다그때가 최고다여기저기 사상자가 발생하고탱커는 소수만 남고몹들은 사방으로 튄다누구를 살릴 것인가누구를 죽일 것인가저 전사는 치유를 받아도 버티는 힘이 약하다저 전사는 조금만 백업해주면 35초쯤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다두 명의 법사가 남았다저 법사는 마나가 바닥이다.이 법사는 마나가 반쯤 남았다한 번쯤 딜을 왕창할 여력은 있어 보인다살릴 자와 죽일 자가 결정되었다집행한다내가 가진 바온갖 위기 대처 기술과 물품을 소모해서최후의 마나까지 다 짜내서 살린다실패하면, '아까 이렇게 판단했어야 하는 건데라고 혀를 찬다다음에 같은 경우가 생긴다면 이번의 실패가 참고가 될 것이다성공하면기분이 좋다누가 나의 이 칼같은 판단력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나혼자 기쁘고 즐거우면 되는 거다

여기 어디에 희생자가 있단 말인가여기 어디에 남을 위해 온갖 순정 다 바치고 몸버리고 (?) 일마 버린 (?) 천사가 있단 말인가
있는 건 게이머 뿐이다

물론이렇게 냉정해지기는 쉽지 않다힐러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왜냐하면 레이드의 세 가지 영역 탱킹/힐링/딜링 중에 가장 '실수하기 쉽고' '실수했을 때의 결과가 참담한것이 힐링이기 때문이다
탱커가 방어구가르기를 1초 늦게 했다면, 1초 후에 하면 된다딜러가 공격을 1초 늦게 했다면 1초 후에 하면 된다하지만
힐러가 치유를 1초 늦게 하면그 사람은 죽는다

힐러는 사람이다사람이기에실수에 놀란다실수로 누군가를 다치게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게임인데도그들은 파티원을 눕히면 스트레스를 받는다이 스트레스는 다양한 형태로 분출된다미안해하고고개 숙이고사과하는 사람도 있다이 스트레스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왜 물약 안 빨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그건 모두운명의 주관자여야 하는 힐러를 플레이하는 것이 정작 운명에 대해 냉정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대장으로 지내면서나는 힐러들이 이런 롤플레이와 실제의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무너지고폭발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그 심정을 이해하면서도나는 계속 주장할 수밖에 없다그런 스트레스에 지지 않기 위해서이것이 게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궁극적으로는 아군을 살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소녀의 마음이 아니라사신의 마음으로 치유하라고운명의 결정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여담이지만우리 공격대에서 내가 힐러로 배치된 파티는 일명 '죽음의 조'로 불린다공대장 시절나의 레이드 중 행동 우선순위는 1번 몹 루팅 (화심 전체검둥 일부 코스에서는 일반몹 루팅을 계속해야 한다) 2번 운영진 채널에서 지속적인 전략 조율, 3번 메인탱커와 핫라인을 통해서 이후 레이드 일정 조정, 4공대 채널 잡담, 5번 손남으면 힐 (...) 이었다. (랄라)
'
목숨이 간당간당'해졌는데 파티창으로 세번 울면서 제발 힐좀 이라고 외쳤더니 그제서야 작은 힐 한 번 주던 공대장 (...)이라거나아예 대놓고 '울파 힐러 없으니 (나 있는데다른 파 사제님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늘 나왔다
 (...)

질쏘냐성기사의 필살기 무적은 에본로크 앞 고블린 폭탄병들 사이를 누비며 '루팅'할 때만 쓰고새로 공대에 들어온 신규자는 반드시 내 파티로 끌어들여서 신고식을 단단히 치르게 해주고 (?), <우리 파티는 자생 훈련 학교니까 열심히 사세요>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면서나는 힐러가 아니라 '루터'라고 대놓고 말하며 버티고 있다 ~_~ 배째.


나는 묻고 싶다힐러가 아닌 사람들에게당신들은 어떤 힐러와 함께 게임하고 싶습니까눈물이 많고늘 죄책감에 시달리고그 스트레스로 인해 언젠가 '힐러 못하겠어요'라면서 새로 도적이나 법사를 키우는 그런 힐러와 '게임'을 할 수 있습니까아니라면그들의 냉정함을 용인해주십시오그들이 운명의 결정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당신들의 위에 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우리가 게임 속의 생과 사를 게임의 일부로 즐길 수 있게 될 때당신들의 게임 속에서도 승리의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라고.

그래서
이제는 검은 날개 둥지의 첫 네임드이자
,
바로 이런 '냉정한 힐러' '좋은 힐러'라는 가르침을 준 그놈
.
'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너희 모두 끌고 가겠다라고 외치는 폭군 서슬송곳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27.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40
인급 레이드 인던을 두루 경험해본 사람들은 거의 입을 모아 이렇게 각 던전을 평한다화산심장부는 연습용검은날개둥지는 조직력 시험용안퀴라스 사원은 개인기 시험용그리고 낙스라마스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것에 더해 공격대 운영력까지를 시험하는 던전이라고.

화산심장부의 네임드들도 물론 강하다그러나 그 공략의 키워드는 사실 굉장히 단순한 방법으로 풀 수 있다적당한 화염저항력을 갖추고 탱킹과 힐링과 딜링의 기본 역할을 이해만 한다면이른바 원맨 공격대팀이라도 얼마든지 화산심장부를 클리어하는 것은 가능하다그러나 검은날개둥지부터는 원맨 플레이는 불가능하다검은 날개 둥지의 8마리 네임드 몹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의 조직적 공략을 요구한다그리고이 요구는 종종 그 네임드들의 이름으로 읊어지는 시가 되곤 한다.

검은날개 둥지의 입구에 들어서면넓은 방 안 가득 용의 알들이 늘어서있다좌우에는 제단이 있고제단 위에는 지배의 수정구라는 구슬이 보이고그곳을 지키는 감시자 오크 몇 마리가 보인다그리고우리가 처음 상대해야할 네임드인 '폭군 서슬송곳니라는 용족이 이 알로 가득한 방을 오락가락한다사전지식이 없다면 공격대는 바로 이 폭군 서슬송곳니를 공격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달려갈지도 모른다그러나 그것은 전멸로 가는 직행코스다송곳니를 공략하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단계 지배의 수정구를 지키는 오크족 세마리를 잡아죽인다그리고 공대원 중에 한 명이 지배의 수정구를 작동시킨다이 구슬을 작동시킨 자는 일시적으로 폭군 서슬송곳니를 정신지배할 수 있다


송곳니가 지배되면서 바로 두번째 단계가 시작된다부화장에 사고가 난 것을 눈치 챈 오크정예병과 용족들이 송곳니방의 사방 문을 통해서 그야말로 '개떼'처럼 쏟아져나온다. 1단계에서 지배의 수정구를 작동시킨 플레이어는 송곳니를 조종해서 방안에 가득찬 알을 하나씩 부숴나가야 한다. (알을 부수는 것은 일반 공격으로는 안되고 오직 송곳니 조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근 오십개의 알들을 제거해나가는 동안 전 공대원은 거의 비슷한 수 (...)의 오크+용족 공격대와 상대해야 한다.걔들은 장비도 더 좋고 정예몹들이다사실 송곳니전의 하이라이트는 거의 이 2단계라고 봐야 한다여기서 무수한 희생자가 발생한다오크+용족 공대는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늘 보충된다하지만 우리편은 죽으면 다시 못 돌아온다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송곳니 방의 철창문은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닫히기 때문에 무덤에서부터 뛰어온다고 해도 다시 전투에 합류할 수가 없다한 명이 죽으면그만큼 남은 공대원이 받게 되는 '다굴'의 압박은 심해진다
.

천신만고끝에 송곳니 조종자가 방안의 알들을 모두 제거하면지배의 수정구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면서 오크+용족 공대는 우르르 방 밖으로 달아난다그리고이때 비로소 폭군 서슬송곳니와의 전투가 시작된다송곳니와의 단독전투는 위험하긴 하지만 사실 단순한 구조다두 명의 탱커가 번갈아 어그로를 주고받고다른 클래스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공격하고,치유하면 된다사실 3단계가 어려운건 2단계에서 희생이 너무 클 경우 남은 전력이 적을 때 뿐이지, 3단계까지 적은 희생자로 통과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제 2단계 때정신지배된 폭군 서슬 송곳니는 '아군'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그래서 송곳니 지배자의 조작에 따라 주변의 오크+용족 공격대에 송곳니가 두들겨 맞아 죽는 일도 생긴다그런데 이렇게 하면 공략은 실패하고 만다.폭군 송곳니는 2단계에서 죽게 될 경우,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너희 모두 끌고 가겠다!" 라는 대표 대사를 읊으며 그 방안의 오크용족그리고 플레이어의 공격대 전원을 '일격'에 죽여버린다참으로궁극의 물귀신 필살기라 아니할 수 없다.

때문에 송곳니 공략은 반드시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두명 정도로 이루어지는 수정구 조작자가 송곳니를 지배하여 방안의 알들을 모두 깨는 동안 공대원들은 오크+용족을 따돌리며 버티고알이 모두 깨져 몹 공대가 물러가면 그때 비로소 송곳니를 처치하는 것이다이렇게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폭군 서슬 송곳니그러나 우리는 검은날개 둥지에 진입하고나서 정말 오랜 기간 폭군 서슬송곳니 앞에서 머뭇거렸다왜 그리 눕지 않는지다른 공격대는 진입하고 첫 도전날에 잡기도 했다는 이 녀석을우리는 거의 한달 넘게 끌었던 것 같다


물론그 시기에 화심을 마무리한 후의 여파로 많은 인원 교체가 있었다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직 화심 장비도 못갖추기도 했다하지만 이런 '소소한물갈이의 여파는 어느 시기에나 모든 공격대가 안고 가는 문제다라그나로스에서 왜 그리 시간을 끌었을까의문을 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우리는 검은날개 둥지의 첫관문에서부터 좌절에 부딪쳐야 했다
.

지금에 와서나는 조금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우리 공격대는그때 아직 절제를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화산심장부에서는 절제는 없어도 큰 지장이 없는 덕목이었다더군다나 우리는 극도의 힐과 극도의 데미지딜링을 해야 하는 라그나로스를 '넘은 상태였고한 번 잡은 후에도 당일 출석율에 따라 여전히 라그에서 주저앉는 날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라그를 잡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오버파워'에 익숙해져야 했다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힐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탱킹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데미지 딜을 해야 하는 라그나로스


하지만송곳니의 키워드는 오버가 아니었다우리는 해법이 극단적인 두 개의 네임드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나 비슷한 상황이었다그걸 몰랐다그래서우리들은 늘 2단계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다시 이글거리는 협곡의 무덤에서부터 뛰어와 방안을 가득 채운 수십개의 알들 앞에 모여 '다시 갈게욧'하는 메인탱커의 말을 들어야 했다


수십마리 공대급 몹에 둘러싸여 맞기 시작하면 불과 1,2초 안에 이런 모습이 되어버리곤 했다

정말로 징글징글하다.


지금까지도 같이 공대 활동을 하는 한 사제는 이런 말을 했다.
"
처음 송곳니 들이댈 때는정말로 이런 놈을 어떻게 잡나우린 못잡나보다그렇게 생각했어요."

정말로그때는 그랬다도대체 이미 잡았다는 공격대는 어떻게 잡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때문에유혹의 목소리는 참으로 달콤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거듭되는 전멸에 공대원들의 사기가 뚝 떨어졌을 때한 사람이 말했다.

"저송곳니 버그로 잡는 방법 있는데......"

 

게임의 신이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28. 가지 않은 길

전편의 마지막 장면
"
송곳니 버그로 잡는 방법 있는데
..."
거듭되는 전멸에 지친 공대원들의 눈은 빛나고.... 과연 그들은 이 금단의 열매가 내뿜는 달콤한 향기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40인의 바보들 앞에 다가온 거부할 수 없는 유혹과연결과는기대하시라개봉 박두두두두두두.... ( -_)



송곳니를 버그로 잡는 방법을나는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왜냐하면저 말이 나오자마자거의 반사적으로 뒷말이 나오는 것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
안됩니다."


반복되는 전멸로 지쳐있던 공대원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아쉬웠을까아마 이것이거의 처음으로 '물 위에공대장으로서 단호한 태도를 드러낸 때였을 거라고 기억한다그 전에는 나는 앞서 말한 대로 '농땡이공대장이었으니까.

와우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성기사에게는 '중재'라는 스킬이 있다이건 어떤 스킬인고 하니말 그대로 전쟁 상태인 적과 아군 사이를 '중재'하는 스킬이다성기사는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 양자를 일정 시간 화해시킨다그래서이 스킬을 쓰면 성기사는 무조건 '죽는다.' 대신중재를 받은 아군은 일정시간 동안 적에게 '공격'받지 않는 대상이 된다그외에 남은 다른 아군이 없다면 적은 물러난다이건 주로 전멸 위기일 때 사용하는 스킬로얼라이언스에서는 이 방법으로 성기사가 다른 부활 가능 클래스에게 중재를 걸고모두 전멸한 뒤 중재를 받은 플레이어가 몹이 물러난 다음에 아군을 부활시키는 방법으로 전열을 재정비한다중재버그란 바로 이 스킬의 특성을 사용하여송곳니 공략 2단계시 잠시동안 '아군'으로 분류되는 송곳니에게 중재를 사용하고몬스터 공격대가 더이상 전투 대상이 없다고 인식하여 모두 퇴장한 뒤에 송곳니만을 상대로 전투하여 승리를 취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다실제로 써본 적은 없어서 자세한 방법은 모른다.


사실 유혹은 강렬했다검은날개 둥지에서 네임드 하나를 '잡는다'는 것의 의미는 크다그건 단적으로 말해 공격대 내에 상위 직업 셋템 3피스 보유자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셋템의 나머지 두 피스는 라그나로스와 오닉시아가 준다아주 쉬운 방법으로 우리는 '보물'을 획득할 수 있다그 유혹에 설령 넘어간다고 해도 그게 그리 큰 죄일까더군다나,이것은 위치버그 같은 걸 이용한 방법도 아니다말 그대로 얼라이언스의 한 직업군에게 특화된 스킬로 공략의 복잡한 단계 하나를 줄여버리는 것 뿐이다.

그런데도 내 본능은그 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빨간 신호등을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왜였을까그건우리가 검은 날개 둥지의 첫 관문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내겐 그 방법이 '버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었다그게 '쉬운길'인지'어려운길'인지가 중요했다그때 우리는 '우리 공격대 수준에서는 송곳니를 '정석'대로 잡는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며,자신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만약 그때그 방법을 써서 송곳니를 잡는다면기쁘기는 할지 몰라도 여전히 그 자신감 부족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그 뒤로 다른 어려움에 부딪칠때마다 원죄처럼 솟구쳐올랐겠지우린'송곳니'도 꼼수로 잡은 공대니까우리 공대의 수준은 이 정도니까이 이상 앞으로는 나가기 힘드니까이쯤에서 타협해도 좋아게임에 뭘 그리 목숨을 걸어이 정도까지만 하는 거야이렇게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됩니다라고 했다쉬운 길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영리한공격대가 될 것이다어려운 길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망하거나아니면 '강한공격대가 될 것이다강철은 두들겨서 만드는 법이다나는 그때 그 '반대의사'에 내 공격대 활동 여부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중요한 일이라고 여겼다공대원들이그리고 메인탱커가 원한다면 하긴 한다.하지만 그렇게 송곳니를 잡게 된다면그게 내가 이 공격대의 한 사람으로 레이드를 뛰는 마지막 날이다라고 혼자 속으로 결정했다공격대가 이후의 난관에 쉽게 약해지는 것을 걱정한 면 보다도어쩌면 게이머로서의 자존심 같은 것에 사로잡힌약간은 감정적인 단호함이었다게임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버그플레이무적키이런 것들은 바로 그 게임을 '그만하게만드는 종말의 징조라는 것을.


우리들 대다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나의 '안됩니다이후에내가 혼자 생각했던 저 '단호한결심들이 무색해질 만큼공대원들은 편하게 말했다.

"
하긴그게 버그 플레이면 곧 막힐 텐데그때 가서 또 고생하느니 지금 정석대로 잡아봐요."
"
그래요좀만 더 하면 되겠네."


.... '';; 
민망했다!! (... 괜히 심각하게 말했네 - 하고 --;;)
아무튼 그래서우리는 40명의 바보들답게더 이상 '가지 않은 길'을 돌아보지 않고다시 전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려갔다. '가지 않은 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하지만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없다.

그 길이 잘못된 길이건단지 '현명한길이건 상관없다
쉬운 길을 택한 자에게는 거기 합당한 보상이

험한 길을 택한 자에게는 또 거기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그 선택을 통해서공격대는 또 하나의 개성을 갖게 된 것이다.

 

공격대 이야기 - 29: 첫번째 길모퉁이를 돌다

2006/08/08 16:59

2차에서 생존자가 많았지만전사들이 너무 많은 몹을 달고 다니다가 누워서 송곳니 탱킹할 사람이 없어 전멸한 적도 있다거꾸로사제들이 전부 누워서 힐러가 부족해 전멸한 적도 있다중간에 죽었다가 무덤에서 뛰어온 사제들이 철창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광역 치유 기술인 치유의 기원으로 힐을 해보기도 했다창살 건너 저편에서 힐을 하는 모습은정말 처절하기 그지 없었다. (...) 사실 큰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그 한 점의 힐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만큼 절박했다.

이 시기에우리는 '전멸'을 연습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기가 잘 잡힌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의 차이는 '후퇴'할 때 드러난다고 한다규율이 잘 잡힌 공격대와 그렇지 않은 공격대의 차이 중 하나는 전멸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사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면 경험자는 누구나 '이번 판은 텄다'는 걸 안다성미 급한 사람은 '포기하고 새로 가요'라고 외치기도 한다그 말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물약을 마시면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일단 물약을 안 마시게 된다실제로 그것이 포기할 만한 상황이었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누군가 '포기해요라고 말하면 그건 정말 버리는 판이 된다.

그래서이 시기에 우리는 약속했다전멸은 메인탱커가 결정한다라고탱킹만 열심히 하다가 누워버리면 탱커 역할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그냥 사망자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그때부터는 전황을 판단하고 후퇴와 도전을 결정하는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 생각해보니 죽은 뒤까지도 부려먹은 악덕 공대장이었던 셈이다
. ;

최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하면서 책임을 맡은 메인탱커는 공략 실패가 눈에 보일 때 아마 누구보다도 낙담할 것이다그리고 머리속은 복잡하겠지하지만 메인탱커에게 '전멸 결정권'을 주면서나는 이 전투의 '중심'에 선 사람이 '패배조차도 침착하게 '결정할이성을 갖고 있기를 요구한 셈이다그가 빨리 판단하지 않으면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더 많은 물약을 낭비한다


때로는 전멸이 뻔히 예상이 되더라도, <'메인탱커의 전멸 사인'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라는 한 마디에 가진 물약 다 먹고 필살기 써가면서 버텨보기도 했다질게 뻔하더라도 연습을 위해서 끝까지 부딪쳐봐야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그 판단을 존중한 것이다때로는 아직 초반인데도 빠른 재도전을 위해 이른 시기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지체없이 '전멸합니다사인을 내기도 했다그러면 하던 치유를 중단하고무기를 벗고부활 가능한 자리로 이동하고영혼석 유무와 중재를 확인한다
.

이렇게 우리는 '질서정연한전멸을 연습했는데이게 때때로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엄청난 전멸을 반복하면서우리는 조금씩화산심장부와는 다른 검은날개 둥지의 비밀에 접근해갔다우리는 수십마리의 몹들 속에서 '혼자살아남는 법, '살아남는 것에 지장 없을 정도로 남을 돕는 법'을 배웠다


화산심장부에서는 네임드와 싸울때 네임드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졸개들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끽해야2-3마리많다고 해도 6-8마리 정도로 전사들이 각자 하나씩 탱킹을 하고 차례대로 점사하는 방식으로 보통 처리를 했다.그러나 검은 날개 둥지의 '졸개'들은 그 숫자의 규모가 다르다전사가 붙잡아 탱킹할 수는 없고점사를 해서 처리할 상대도 아니다무엇보다도 하나를 처치해봤자 또 하나가 젠되어 나온다이 전투는 '섬멸전'이 아니다. '버티기'이런 상황에서 가장 '냉정'해야할 것은 힐러들이었다힐러들은 화산심장부에서어떻게든 '탱커'를 살려야 한다는 교훈만을 배우고 왔었다그러나 이젠 달랐다.

와우에는 힐링 어그로라는 것도 있다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A,B,C라는 몹 세 마리가 있다전사가 이놈들 앞으로 달려가서그 중 A라는 몹에게 데미지를 주면서 어그로를 당겼다. (이 어그로를 100점짜리라고 치자) B C는 자신에게 전사가 준 피해는 0이지만자기네편을 때리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전사를 어그로 1위로 인식하고 같이 팬다. (이 어그로를30점짜리라고 치자그때뒤에서 다가온 힐러가 전사에게 70점의 치유를 했다. (이 어그로를 50점 짜리라고 치자그러면, A라는 몹은 힐러가 획득한 50점의 어그로보다 자신이 전사에게 느끼는 100점의 어그로가 더 강하기 때문에 전사를 여전히 팬다그러나 B C 몹은 자신이 전사에게 느끼는 30점의 어그로보다힐러에게 느끼는 50점의 어그로가 더 강하므로 힐러에게 돌아선다.


송곳니전에서는수십 마리의 몹이 나오기 때문에전사를 '치유'하는 순간 힐러를 돌아보는 ''의 수가 엄청나다잘못 꽂히면 바로 사망이다때문에위와 같은 단순한 공식을 예로 들어서철저히 30점 미만의 어그로를 유지하면서 치유를 해야만 살 수 있다이것이 송곳니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절제의 미덕이다

기나긴 기간과 많은 골드를 수업료로 바치면서조금도 변화가 없는 2차전 생존율에 한숨을 지으면서우린 언제쯤 대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고민 하던... 어느날
.

마치 어제까지 가장 단순한 수학 공식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갑자기 오늘 그 공식에 담긴 모든 비밀을 풀어내고 응용까지 가능해져버린 것처럼
.
마치 십년째 꽃을 피우지 못해서, '저건 꽃이 없는 나무인가봐'라고 생각하고 있던 고목에 어느날 아침 갑자기 꽃이 만개한 것처럼
.

그 일은 '느닷없이일어났다. 2차전에서 항상 '절반 이하'의 생존율을 보이던 공격대였는데이상하게도그날따라 생존자가 '너무많았다나도 놀랐고메인탱커도 놀랐고공대원들도 놀랐다놀라면서 방 안에 남은 알들을 세어봤다남은 건5오크와 용족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남은 알갯수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5, 4, 3, 2, 1, 마지막 알입니다!

마지막 알이 깨졌다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오크와 용족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그리고 송곳니가 우리들 앞에 비로소 '진정한적으로 등장했다그때 우리 공격대의 생존자는 참가자 38 32명이었다송곳니도 놀랐겠지만 (...) '갑작스럽게높아진 이 생존률에 가장 놀란 건 아마 우리들 자신이었을 거다.

믿음직스러운 우리의 탱커 두 명이 송곳니의 앞뒤를 가로막았다절제를 배운 우리들은 급하게 힐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어그로 조절!'을 외치고도적이나 사냥꾼들은 사제와 드루이드에게 붕대를 감아주면서 거리를 유지했다여기까지 왔는데이렇게 힘들게 왔는데여기서 한 순간이라도 실수를 해서 이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다들 무척이나 조심하면서
......

송곳니의 피를 천천히 깎으면서다들 기가 막혀했다
.

"
아니생존자가 20,25, 30명 이렇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
"
갑자기 다들 왜 이리 잘하시는 거에요. -
-"
"
그러게다들 아침 뭐 드시고 오셨어요
. ;;"

기가 막힌 듯이어이가 없다는듯이갑자기 기적의 세례라도 받은 것처럼우리는 송곳니를 눕혔다.

아래는 송곳니 킬 기념 스샷 중의 하나인데,
우리 공대원 중 한 사람은 특이한 취미를 갖고 있어서

네임드를 잡을 때마다 그 앞에서 꼭 이렇게
"
네 이놈하고 몹을 야단치는 독사진을 수집하곤 했다
... '
네이놈시리즈의 송곳니판이다
.
'
뭐 잘못 먹고 오기라도 한듯이전날과 다르게 '갑작스러운전력 상승이었다고 혀를 내둘렀지만사실 우리는 그 비밀을 알고 있다그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외의 선물이 아니라는 걸

가지 않은 길을 포기하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때우리는 바보짓을 했을지도 모른다이 우회로는 아주 길고 산 너머까지 굽어져 있어서길 끝에 뭐가 있는지 걷는 동안은 보이지 않았다언제 이 여행이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그렇게 오랫동안 걸은 끝에우리는 산모퉁이를 돌아선 것이다그러자 그동안 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이 길의 끝이 갑작스레 나타나 보인게다.

그렇게 우리는 검은 날개 둥지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하나의 길이 끝났지만그게 여행의 끝은 아니었다
.
그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검은날개 둥지의 진정한 보스라고 불리는바로 ''였다.

 

30. 붉은용벨라스트라즈

그는 누구인가? ~스트라즈라는 이름의 형식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첫째그는 붉은용의 혈통을 타고 났다. ~스트라~는 붉은용들에게 붙는 이름이다둘째스트라''로 끝나는 이름으로 보아 그의 성별은 남성이다예전에 오닉시아 이야기를 할 때 언급된 알렉스트라'같은 경우는 여성이다통칭 '벨라'라고 불리는 검은 날개 둥지의 두번째 네임드의 이름 옆에 붙는 바이라인은간단하게 말하자면 붉은용숫놈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블리자드의 사악한 음모에 의해 그는 단순한 붉은용이 아니게 되었다그는 피통 크고 발톱 아픈 '보통의네임드가 아니다그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모든 몹들의 기본 디자인을 뒤집은 기린아였다그는 '가장 많은 유저를 죽인 몬스터' 1,2위에 항상 언급되고 있다때로는 데피아즈단 마법사때로는 어둠의 사냥꾼 보쉬가진이 그와 선두를 다투지만다른 몬스터들이 '저렙 시절혹은 ' 4대 인던에 입학한 풋내기 만렙'들을 제물로 삼는 하이에나 같은 살인자인데 반해벨라는 급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는 단순히 '유저'만을 죽이는 네임드가 아니다그는 무수한 '공격대'를 실제로 괴멸의 길로 이끌고 간 장본인이다단지 인공지능 몹일 뿐인 한 던전의 중간 보스가살아 움직이는 실제의 게이머 조직을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다.어째서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단지 몹이 강하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공격대를 해산까지 몰고가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훗날공대장으로서 나는 그 이유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벨라를 처음 만난 것이 아니다. 1레벨부터 60레벨까지 캐릭을 키우는 와중에이 벨라스트라즈와 여러번 조우하게 된다
첫 만남레벨 40대 초반의 가시덩쿨 구릉이라는 인스턴스 던전이아마도 풋내기 모험가가 처음 이 붉은용과 만나는 곳이리라그곳에는 "벨리스트라즈" (오타 아님라는 이름의 '인간'이 감옥에 갇혀 있다모험가들은 벨리스트라즈를 구출한 뒤이 가시덩쿨 구릉을 장악한 가시멧돼지들의 우상을 파괴하는 그의 일을 돕게 된다벨리스트라즈가 우상 파괴의식을 치르는 동안 모험가들은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의식이 방해받지 않도록 막아선다그리고의식이 성공하면... 벨리스트라즈는 홀연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붉은용의 형상이 은은히 떠오르는 불타는 화로가 나타난다풋내기 모험가의 머리속에 벨리스트라즈의 목소리가 '울린다'

"언젠가는 죽어 흙으로 돌아갈 생명이여... 기대한 대로 과연 영웅이라 할만 하다네 덕분에 이 야수들이 저지르던 처참한 학살은 이제 종결되고 너같은 평범한 생명체들에 대한 내 믿음도 다시 한 번 살아났도다영웅에게 걸맞는 보상을 받을 지어다."

벨리스트라즈는 모험가에게 반지 하나를 선물로 주고 사라진다이것이질기디 질긴 인연의 시작이다.

이 모험가는 그후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마침내 60레벨에 도달한다그리고 검은 바위 첨탑 하층에 셋템(...)을 모으러 룰루랄라 가게 된다그곳에서그는 던전 안을 방황하는 낯선 인간을 만난다그 이름은 벨란그런데낯선 남자에게서 어쩐지 낯설지 않은 냄새가 난다. (...) 벨란은 모험가에게검은바위첨탑의 좀 더 높은 곳 '상층'으로 가는 열쇠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그가 알려준 바에 따라모험가는 하층을 지키는 세 장군을 잡아 그들로부터 열쇠의 조각이 되는 세 개의 보석을 구하고최종적으로 이 인장을 완성시키기 위해 테라모어의 용 서식처로 가서 앰버스트라이프라는 용을 정신지배해 그의 브레스로 인장을 달구어 최종적으로 '승천의 인장이라는 반지를 만들게 된다.

풋내기 모험가가 승천의 인장을 끼고지금껏 열리지 않았던 육중한 문 앞에 서면드디어 검은 바위 첨탑의 '상층'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치열한 전투 끝에 모험가는 거대한 투기장과 같은 곳에 도착한다그곳의 관람석에는 바로 빅터 네파리우스 (네파리안의 인간형)가 있다어리석은 모험가들을 노리개감으로 삼아 부하들을 내보내던 네파리우스는이 모험가가 자신의 부하들을 하나하나 물리치자 최종적으로 가장 신임하는 족장 랜드를 내보낸다

랜드는 '기스'라는 용을 타고 나와 모험가들을 짓밟는다상처투성이가 된 모험가가 마지막 희망을 품으며 '승천의 인장'을 사용하는 순간한 거대한 용의 형상이 이 투기장 안에 출현한다한 때 '벨리스트라자'였고한때 '벨란'이었으며풋내기 모험가를 검은 바위 첨탑의 진정한 군주 네파리안 앞까지 인도한 붉은용 '벨라스트라즈'가 바로 그다벨라는 모험가를 도와 랜드를 물리친다그리고 투기장 위에서 이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빅터 네파리우스와 벨라 간에 잠시 날카로운 설전이 오고가는 것을 풋내기 모험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랜드는 쓰러졌지만그들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네파리우스가 언젠가는 내가 벨라너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무섭도록 불길하게 들린다그렇게그 날의 만남은 끝난다.

이것이 바로 검은날개 둥지에 들어가기 전이 모험가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벨라의 모습이다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악한 우상을 파괴하며 돌아다니는 자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영웅을 보다 높고 위험한 도전으로 이끄는 자인간의 모습을 하고 만나용의 모습을 드러냈던 자검은 바위 첨탑의 군주에게 대적했던 자데스윙의 장난이 아니었다면 자기와 같은 붉은용의 일원이었을 네파리안의 음모를 깨기 위해 불철주야 움직이던 자벨라스트라즈.

풋내기 모험가는 그 뒤로, 40명의 바보들 중 하나가 되어 화산심장부의 모든 네임드들을 물리치면서 여기저기 계급장처럼 상처를 달고에픽 아이템도 처덕처덕 둘렀다그는 점점 풋내기 꼴에서 벗어났고이제는 제법 역전의 베테랑처럼 굴기도 한다검은날개 둥지 초입에서 폭군 송곳니를 만났을 때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그 고비조차 넘겼다

폭군 서슬송곳니의 시체 너머로 철컹 - 거대한 철문이 열렸다그 안에 들어갔을 때이 풋내기 모험가의 눈에 보인 것은.

이렇게 쓰러진 벨라스트라즈 앞 옥좌에서빅터 네파리우스가 제압의 마법을 쓰고 있다가 공격대를 보고 거만하게 말한다.

"
영웅들아주 끈질긴 족속들이지바로 이곳에서 너희 동료가 내게 도전했다가 그 댓가를 치루었다이제 녀석은 나를 섬기지일어나라.. 붉은 고룡이여놈들을 처치하라
!"

네파리우스는 사라지고쓰러졌던 벨라가 힘겹게 일어선다그의 체력은 100프로가 아니라 30프로 상태다그는 거의 죽어가고 있다힘겹게벨라는 공격대를 돌아본다거기 서있는 모험가들은, '막 말을 탈 수 있게 된' 40레벨대부터그가 계속 지켜보았던 영웅의 씨앗들이다그는 이 모험가들이 자신과 함께 네파리안의 음모를 깰 수 있게 되기를 바랐으리라그렇게 되리라고 믿었으리라그러나한 가지는 맞고한 가지는 틀렸다그 영웅의 씨앗들은 결국 네파리안에 맞서기 위해 이곳에 왔으나벨라그 자신이 바로 그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통탄하며그는 말한다.


너무... 늦었어.
네파리우스의 타락이 뿌리를 내려난 나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
..
부탁이다도망쳐라내가 완전히 자제력을 잃기 전에
.
내 가슴 속에 검은 불길이 끓고 있다내뿜어야만 해
!
!
파괴
!
죽음
!
군주의 분노를 두려워하라
!
안돼난 싸워야해
!
알렉스트라자여도와주소서
!
난 싸워야해...

마지막 남은 이성의 힘으로그는 한때 자신이 관심을 기울였던 모험가들에게 자신을 '죽일 수 있는가능성을 주기 위해 마법을 걸어준다. 3분간매초당 500의 마나를 회복시키며매초당 50의 기력을 회복시키며매초당 20의 분노를 회복시키는그래서 모든 캐스터와도적과전사를 그야말로 '최강'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이 마법의 이름은 적색의 정수그것이, 30퍼센트의 체력상태로 마침내 이성을 잃고 공격대를 향해 화염숨결을 뿜게 되는 벨라스트라즈가 먼옛날의 풋내기 모험가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만약 이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오늘 그 어떤 공격대도 네파리안에게혹은 쑨에게 좌절하는 일 따위 없을 것이다.

40명 전원을 최강의 상태로 만들어주고
그 자신은 30퍼센트의 체력만을 남긴 상태로
 
'
'와 공격대의 전투는 시작된다

그렇게 하고서도그는 강하다

너무나 강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그가 상위 허리와 용아 비수와 붉은용 수호방패를 주기 때문

그를 넘어서야만 검은 날개 둥지의 나머지 코스를 정복할 진정한 자격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락한 그를 죽이는 것이과거에 만난 벨리스트라즈벨란이라는 이름의 붉은용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제우리는 벨라스트라즈와 싸운다.

 

31. 가야할 때누워야할 곳사라져야할 순간

송곳니가 쓰러지고그 방의 철창이 열렸을 때공대원들은 이제야 검은날개 둥지의 참맛을 보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기뻐했다하지만 그 기쁨은 티없는 기쁨이 아니었다우리 앞에는 벨라가 있고우리는 그 벨라가 앞선 공대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묶어두었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우리는 나름대로 겸허한 '후발공대였고공대의 많은 사람들은 레이드 경험이 처음이라는 것직장인이거나 주부이기 때문에 젊은애들(...) 처럼 컨트롤이나 센스가 빠르지 않다는 것 등등자신들의 약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로 벨라 앞에 섰던 것이다

'
남들은 쉽게 잡는다는 송곳니에서 한달 넘게 걸렸으니 벨라는 두달 이상 걸리겠지두달 걸려도 느린 건 아냐라고혹시라도 성급하게 생각할 사람들을 다독이는 목소리도 있었다말하자면우리는 벨라에 대해 들은 온갖 무시무시한 전설들 앞에 공손해질 수 밖에 없었고두달 정도쯤은 벨라 앞에 수리비와 상급 화염보호 물약을 헌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2005
 11 18일 레이드 종료 시간 직전에 폭군서슬송곳니를 눕히고우리는 일단 벨라 앞에 가서 이미 다른 공격대에서 벨라전을 경험해본 전사B의 브리핑을 들었다뭔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아무튼 무섭다는 것은 분명했다한 가지 똑똑히 알아들은 것은 '아드레날린'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데 죽을 때 폭발 데미지가 있어서 주변에 피해를 주니까 걸린 사람은 지정된 구석으로 가서 끽소리 말고 조용히 죽으라는 것 정도였다. (...) 레이드 시간도 거의 종료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브리핑은 더 듣지 않고벨라님께 상견례나 하고 마치자 하고들이댔다
.

예의 멋진 대사가 흘러나왔다다들 워카리스마! >하면서 좋아했다벨라님이 적색의 정수 버프를 걸어줬다아싸마나 차는 거 봐라무지 빨리 찬.........
?

... 
 5초쯤 걸린 것 같다벨라님께서 첫인사 드리러 온 공격대를 전멸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 (...)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래그래이것이 바로 둥지의 진짜 보스라는 벨라님의 맛인 거야. >익숙해지자구우린 앞으로 이런 삽질 많이 해야 해~" 하고 격려한 뒤그날 레이드를 마쳤다.

길어서 접습니다

도로 접기
다음 한주화산심장부를 뛰는 동안 벨라님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그렇게나 한 존재에 대해 연구하고애태우고그를 위한 선물(상급 화보와 화저세트)을 준비하기 위해 아라시 고원에서 원소 앵벌을 했던 것들을 돌이켜보면거의 벨라와 사랑에 빠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하지만 이 무서운 붉은용은 쉽게 공략(..)되지 않는다극한의 뎀딜극한의 힐링 외에벨라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가야할 때누워야할 곳사라져야할 순간을 알 것.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벨라전의 대표적인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벨라전은 타임어택이다벨라가 공격대에 걸어준 이로운 마법인 적색의 정수는 3분짜리인데 3 180초 안에 벨라를 눕히지 못하면 이기기 어렵다그 이유는 벨라의 탁월한 화염 공격력 탓도 있지만이 용이 일정 주기마다 공격대 한 명에게 거는 '불타는 아드레날린'이라는 기술 탓이다짧게 줄여 '아드'라고 표현하는 이 기술은 18초간 지속되며, 18초 동안 아드에 걸린 사람은 매초마다 5퍼센트씩 생명이 줄어들고마지막 순간에는 주변 일대에 폭발 데미지를 주면서 사망하게 된다성기사의 무적도 이때는 소용이 없다

벨라는 이 아드레날린 기술을 45초마다 '마나가 없는 직업군'중 어그로 최상위자에게 한 번, 15초마다 '마나가 있는 직업군'중 어그로와 상관없이 랜덤하게 한 번 사용한다


그렇다면 벨라전 최적 180초 안에 '피할 수 없는 사망자'는 총 몇명인가? 4명의 '마나 없는 직업군'이 죽어야 하고, 12명의'마나 직업군'이 죽어야 한다이것이 정확히 180초 안에 벨라를 눕힐 경우그리고 아드의 지속시간인 18초간 아드 대상자가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죽었을 때 낼 수 있는 '최소의희생자다만약 아드 대상자가 18초 전에 죽게 되면 그때부터 다시 아드 기술 주기 카운트가 새로 시작되기 때문에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 40명에서 16명을 빼면24명이 남는다싸움이 길어지거나 벨라의 일반 화염 브레스회전 베기 등에 추가 사망자가 날 경우에는 더 적어진다갈수록 줄어드는 아군의 전력으로만약 3분을 넘겨 적색의 정수 버프까지 없어진 상황이라면 더군다나 승산은 없어진다게다가 벨라의 '머리'가 만약 공격대를 향하여 화염숨결을 뿜어내게 되면 거의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버려진 아이스콘처럼 순식간에 녹아버린다따라서벨라의 머리는 반드시!! 딜러와 힐러들이 위치한 쪽이 아닌 다른 곳에 '단단히고정되어야 한다

'
머리'를 고정한다는 것은 곧 어그로를 고정한다는 것이고이 임무를 전사들이 맡는다

'3
'안에 죽여야 한다는 것은 곧 극도의 뎀딜을 요구하는 것이다이 임무를 도적과 원거리 딜러들이 맡는다
.
'
불타는 아드레날린'이외의 이유로 사망자가 발생해서는 안된다벨라의 광역 화염 데미지는 굉장히 강하다이것으로부터 공대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힐러가 맡는다.

우선전사는 벨라 앞에서 죽을 순서를 정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다시피벨라는 45초마다 어그로 최상위권자인 마나 없는 직업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전사와 도적이다에게 아드레날린을 건다전사와 도적의 역할과 능력은 다르다어그로 최상위는 반드시 전사가 잡아야 한다그리고벨라의 어그로를 잡은 전사는 '반드시죽는다그렇게 죽어야할 전사가 4명이 필요하다. (180초의 배틀타임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그냥 4명이 한꺼번에 탱킹을 하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아드레날린으로 사망할 경우 주변에 폭발 데미지를 주므로탱킹하는 장소에는 오직 그 '죽을전사만 서 있어야 한다그 전사가 죽으면바로 다음에 죽기로 되어 있는 전사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이 중간 과정에서 잠깐이라도 어그로가 새면 (도적이나 사냥꾼 등에게벨라의 머리가 돌아가고 그러면 피해가 막심하다그래서 우선 '전사'들은 죽을 순서를 정해야만 한다


전사외의 클래스 - 원거리 딜러힐러들은 '누워야할 곳를 알아야 한다.
 
아드레날린에 걸릴 경우 반드시 공대원이 없는 곳에 가서 죽어야만 하니까게다가 그냥 맥없이 죽는 것도 아니다아드레날린에 걸린 동안은 모든 기술이 '즉시시전상태가 된다캐스팅에 3초 걸리던 마법이 쓰면 바로 나가게 되는 거다. (말 그대로 아드레날린 상태미친 듯이 퍼붓고 죽는 것이다그래서아드레날린에 걸린 원거리 딜러힐러들은 일단 무덤으로 보아둔 곳으로 뛰어가서 미친듯이 힐을 하거나 벨라를 향해 마법을 쏘고는 마지막 순간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구석에서 홀로 죽어간다뒷일은 살아남은 동료들에게 부탁하면서! (.. 그리고는 누워서 공대창으로 벨라의 남은 체력을 카운트 해주면서 응원을 한다
 (...))

도적들은 사라져야할 순간을 알아야 한다.
 
벨라의 어그로를 전사로부터 빼앗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적'들은 제일 첫 전사가 죽고 두번째 전사로 탱커가 교체되는 순간반드시 '사라져야한다. '소멸'은 도적들의 어그로 조절 스킬이다그림자처럼 사라져서 지금까지 데미지 딜링을 통해 누적된 어그로를 날리고 자신의 존재를 적의 시야로부터 일시 지우는 것이다


말로 하긴 쉽다그러나 거의 모든 공대원들이 동시에 강력한 화염데미지를 3초 마다 맞으면서이따금 회전베기와 엄청 센 브레스까지도 맞아가면서, 1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극한의 뎀딜을 퍼부어가면서 그 와중에 자신에게 아드레날린이 걸린 건지 확인해가면서 (이거 놓치는 사람들 많다...) 누구 하나 실수 없이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180 180초는 결코 쉽지 않다


초유의 관심사는 일단 전사의 '순서'였다여기서공대 메인탱커가 당시 쓴 전술지침 중 탱커 순서를 결정한 부분을 발췌한다. (감상 포인트는 볼드체 처리된 부분다른 이름들은 X자로 가렸지만 그 부분은 원문 그대로 인용했다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저분 캐릭명은 절대 저것이 아니다. (...))

(전략) ... 1번 탱커가 사망하면 순간적으로 밸라스트라즈가 다음으로 높은 어그로를 가진 전사를 바라보게 됩니다이 때 밸라스트라즈의 고개가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밸라스트라즈의 타겟이 된 전사님은 재빠르게 전 밸라 탱커님이 사망한 위치로 이동해 메인 탱커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때 전사님들의 재빠른 행동만큼이나 힐러들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힐러들 역시 다음 탱커가 누가 될 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간혹 어그로가튄 탱커분에게 대한 힐이 부족해 탱커가 힘없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밸라스트라즈를 타겟으로 지정한 채 F키를 이용해 힐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또한 공대원님 중 한분이 밸라스트라즈의 타겟이 누구인지 매크로를 이용해 공대 전체에 알려주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탱커 교체 작업을 원활하게하기 위해 메인 탱커를 담당할 순서를 미리 설정했습니다.

탱킹 순서는 1 XXXXX-->2 XXXXXX-->3 XX-->4 못난이-->5 XX-->6 XXX-->7 XXXX

현재 XXXXX님에서 XXXXXXX님 까지는 교체작업이 무난하지만 3파부터는 어그로가 어디로튈지는 글쓰는 저또한 판단되기 힘들어집니다이점은 앞으로의 벨라전 최고의 과제로 남을듯싶습니다. (후략)

죽을 순서를 정하고누워야할 곳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사라져야할 순간을 위해 도적 클래스장은 일제 소멸 명령 매크로를 준비했다

준비는 마쳤지만 우리는 이 싸움이 아주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검은날개 둥지의 진정한 보스라는 바로 그였기에

그런데.

 

공격대 이야기 - 32: 그것은, 돌연, 폭풍우처럼

게임/디지털

2006/08/15 19:52

11 28
송곳니를 킬한 날로부터 2주 후

검은 날개 둥지

벨라스트라즈의 방
 
늦가을의 한낮.


"용서해라나도 죄값을 치를 것이다!"


벨라가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외치는 대사가어김없이 던전 안에 울려퍼졌다무한대의 마나로 퍼붓는 치유와 공격 마법이 난사되는 소리전사와 도적들의 칼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어디선가 또 쓰러져가는 아드레날린 사망자의 단말마첫 전사가 쓰러지고두번째 전사가 쓰러지고세번째 전사가 쓰러지고네 번째 전사마저 쓰러지고...

180
초가 지났다적색의 정수 버프는 끝났다공대원은 반 이상 누웠다다섯 번째 전사는 앞선 네 명의 전사들처럼 안정적으로 벨라의 머리를 잡지 못했다진형이 흐트러졌다벨라가 '움직이기시작했다정상적인 공략이라면 벨라는 처음 디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발을 떼어 옮겨서는 안되는데


도적들이 회전베기에 난자당하고 화염숨결에 녹아내렸다전사가 간신히 벨라의 어그로를 획득해도 난전 중에 힐러들은 제때 그를 치유할 수가 없었다다섯 번째 전사여섯 번째 전사가 쓰러졌다일곱 번째 전사마저도 쓰러졌다벨라의 피는2퍼센트가 남았다남은 사람들은 불과 10여명탱커도 없다파멸의 저주를 날린 흑마법사가 쓰러졌다고통을 걸고 보호막을 쓰는 사제를 향해 벨라가 다가갔다성기사는 천벌의 망치를 날리고장판 깔고 (...), 지휘의 문장을 발동시킨 후 양손무기를 들고 벨라를 때려보지만 벨라는 돌아보지도 않고 사제를 앞발질 한 번으로 쓰러뜨린다

벨라의 피는 1퍼센트가 남았다남은 사람은 불과 다섯 명
...

또 실패구나
.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생각뿐이다당연한 실패다담담해지려고 애쓴다마지막으로 남은 벨라의 피 1퍼센트는정말 1퍼센트가 아니다무수한 공대가 벨라의 피 1퍼센트에서 한달혹은 두 달을 보낸 것이다벨라의 피 1퍼센트는아드레날린 으로 인한 필수 사망자를 뺀 공대의 전력 반으로 상대해야 하는 1퍼센트다탱커가 없거나 어그로가 널을 뛰는 상태에서 맞이해야 하는 1퍼센트다.

길어서 접습니다

도로접기
벨라는 1퍼센트가 남았다우리는 다섯명아니또 한 명또 한 명이 누웠다이제 셋사제가 다시 고통을 건다이미 쓰러진 공대원들이 외친다
"
조금만 더조금만 더
!" 
"1
프로! 1프로
!"
하지만 그렇게 외치면서도 이미 공대원들은 다시 무덤부터 뛰어올 마음의 준비를 한다남은 사람은 셋여전히 벨라는1퍼센트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조금만 더!" 라고 외쳐도 "조금 더"를 깎기 위해서는 아직 한 두달을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래도응원한다그것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동료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에


네 번째 전사로 이미 아드레날린에 걸려 사망한 메인탱커 역시이런 처참하고 가능성 없는 상황에서도 전멸 사인을 내리지 않는다공대장인 나 역시전멸 사인은 내지 않았다사인을 내지 않아도 어차피 몇초후면 전멸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한 명이 더 쓰러졌다이제 남은 사람은 둘


나머지 공대원들은 모두 누운 채로 벌써 벨라를 이만큼이나 깎아내렸다는 것에 뿌듯해하면서한편으로는 너무 난전이라 이건 제대로 된 공략이라고 볼 수 없다고 걱정하면서.. 그 거대한 몸을 유연하게 움직여 마지막 남은 희생자들을 향해 움직이는 ''의 자태를 누운 채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남은 사람은 둘.
벨라의 체력은 1퍼센트
.

마지막 남은 사제가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날렸다

파멸의 저주가 터졌다


그리고

사제를 향해 앞발을 치켜들던 벨라가
천천히 쓰러졌다.

 

믿기지 않아서기가 막혀서말이 나오지 않아서어이가 없어서찰나의 침묵그리고 환호방금 온몸이 짜릿해지는 충격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외치는 사람만세를 외치는 사람....

이미 다른 공대에서 벨라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공대원들이 가장 놀랐다이렇게 빨리 잡을 줄은제대로 벨라에 들이대본건 고작 2주인데. 2주만에. 2달이 걸려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주 만에
.

환호와 축하, '내가 날린 파멸이 터졌어!' '나 끝까지 망치 던졌어!' 하는 무용담들이 오가는 그곳은이미 온라인으로 연결된 모니터 앞이 아니라 고대의 용이 잠자는 침침한 던전의 한 방우리는 피투성이땀투성이로 그를 눕힌 40명의 드래곤슬레이어였다


그때내 손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벨라를 잡았다는 실감이 비로소 들었고겨우 심호흡을 하고 진정을 한 뒤에 타자를 쳤다
.

빠른 부활 해주시구요부활 후에 루팅 진행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공격대가 처음 벨라를 잡은 날이다우리는 불과 '2주만에벨라를 정복한 것을 기적으로 여겼다그야말로 돌연폭풍우처럼우리는 검은 날개 둥지의 최대 난관을 통과해버린 것이다공격대들이 무척 많은 우리 서버에서이 벨라전에서의 '기적'으로 인해 우리 공격대는 검은 날개 둥지 정복의 서열이 단번에 얼라이언스 6위로 뛰어올랐다
그 얼마 뒤벨라스트라즈는 블리자드의 패치로 인해 총 체력이 1퍼센트 낮춰졌다벨라의 마지막 남은 1프로가 '단순한1프로'가 아님을 체험했던 선발 공대들은 그 패치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그뒤의 공대들은 속속 벨라를 정복해나갔다요새 만들어지는 공격대들은 불과 3-4주면 네파리안까지도 잡아내기도한다경험이 쌓였고화산심장부 막공대가 활발해지면서 기본 장비도 좋아졌다공략 자체도 무척 대중화가 되었다심지어요즘은 검은 날개 둥지 막공까지 만들어져서 얼마 전에는 1주일 공략으로 크로마구스 앞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이런 지금에 와서는벨라 2주차 정복은 기적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민망한 것이리라
.

먼저 그 길을 가는 사람들보다나중에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쉽게더 빠르게 가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그러니 잦은 너프로 인해 벨라가 과거의 위용을 잃고훨씬 쉽게 정복되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그렇게 정복한 후발 공대를 '제대로 고생 못해봤다'고 폄하하는 것은 사실 어린애 같은 심보다패치 때문이 아니라도진보는 당연한 필연이다우리는 누구나 개척자이기도 하고수혜자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지금은 사라진 그 1프로 덕분에우리는 좀 더 짜릿하게 좀 더 통쾌하게 벨라라는 산을 넘을 수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1프로의 체력이 너프된 이후 벨라전을 치러보고 얼마나 허탈해했던지. 1프로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4번째 탱커와 함께 눕던 벨라가 갑작스레 3번째 탱커가 아드에 걸리기도 전에 누울 만큼 허약해져버린 것이다산이 높아야 정복하는 쾌감이 크다는 것은 확실하다하지만 그건 아마 우리가 이제 사라진 1프로를 겪어보았기 때문에좀 더 어려운 과정을 겪어 봤기 때문에한 번 넘어본 산이기 때문에그뒤로 장비가 좋아졌기 때문에 '쉽다'고 느끼는 것 뿐일 거다장비 허름하고,경험없는 상태로 만났다면 지금의 벨라 역시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게다가벨라스트라즈의 비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체력 1프로 너프로 인해서 좀 더 쉽게 잡힌다고벨라가 공격대 파괴자의 명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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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만에 벨라를 눕히고서 공대장이었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엉망진창 난전끝에 잡긴 했지만 어쨌든 벨라는 누웠다.대체 왜어렵기는 했지만 2주 만에 잡을 수 있는 이 벨라가 왜 공격대 파괴자라는 말을 들은 것일까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벨라 도전 시기가 아니었다.

이제 다들 벨라를 잡는 방법을 알게 되고,
탱커들이 어그로를 놓치지 않고
,
딜러들이 제대로 뎀딜을 하게 되고
,
힐러들도 힐 포인트를 놓치지 않게 된 그때부터
.
벨라전의 노하우를 공대원들이 잘 알게 된 바로 그때부터
,
우리가 벨라의 피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그순간부터

벨라의 역습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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